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잘 놀게 하라!-박형준 국회 사무총장


코믹 광고 하나가 눈에 띈다. 서당 훈장이 '공자와 맹자, 노자 위에 놀자가 있다'고 가르치는 장면이다. 젊은 시절 '예수님도 부처님도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차차차♬'를 불렀던 기억이 겹쳐지면서 킥킥 웃음이 났다. 근데 이게 웃고 넘길 일만은 아니다. 나름 인간의 본질을 꿰뚫고 있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인간을 경제인(호모에코노미쿠스), 또는 일하는 인간(호모파브르)으로 파악하는 것이 주류 패러다임이다. 그런데 요한 하위징아라는 사회학자는 인간의 본질로 호모루덴스를 제시했다.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사실 놀이는 일과 생산, 합리적 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에서 부차적인 활동으로 취급돼왔다. 하지만 하위징아는 이런 인식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오히려 '놀이가 사회와 역사를 만들어온 중심 원리의 하나'라는 것이다.


놀이는 재미가 출발이다. 처음부터 인간은 재미를 추구해왔다. 사냥과 낚시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재미가 없는 사냥과 낚시는 상상할 수 없다. 짜릿함과 성취감이 그것에 빠지도록 만든다. 놀이 과정에서 인간은 능력과 기량을 발전시킨다. 잘 놀기 위해서는 잘해야 하는 것이다. 바둑이든 에어로빅이든 골프든 잘해야 재밌다. 따라서 모든 놀이는 경쟁을 부추긴다. 이 경쟁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게임의 규칙이다. 변덕스러운 놀이 방식은 놀이의 지속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게임 규칙이 필수적이다. 규칙은 놀이의 내용과 형식을 규정한다. 허용되는 행위와 반칙을 엄밀히 구별한다. 축구든 고스톱이든 경연이든 규칙 없이는 놀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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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규칙은 사회의 질서로 녹아들어 간다. 게임의 규칙이 사회에서는 곧 법·제도·규범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놀이는 공동체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가를 익히는 수단이다. 놀이를 통해 친해지고 소통하고 배려하고 단결한다. 놀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창조성이다. 인간은 기존의 놀이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늘 새로운 놀이를 찾는다. 이 과정에서 창조성이 발현된다. 그래서 예술과 놀이는 분리되기 어렵다. 특히 창조성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 디지털 시대는 놀이가 산업이고 놀이가 경제다. 콘텐츠 산업, 레저관광 산업, 문화 산업이 모두 놀이 산업이다. 그래서 새로운 기치가 필요하다. 잘 놀아야 잘 산다. 잘 노는 나라가 잘 나간다. 우리 국민은 잘 노는 국민이다. 흥이 있는 국민이다. 노래 오디션에 수백만명이 참여하는 국민이다. 신바람이 나면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는 국민이다. 국민들을 잘 놀게 해야 한다. 그래야 삶의 질도 경제도 문화도 소비도 좋아진다.

이런 관점에서 아이들 교육도 다시 생각하자. '인성이 문제다' '창의성이 없다'고 하는 것도 제대로 못 놀게 해서다. 혼자 노는 것은 노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놀이의 소외된 형태일 뿐이다. 친구들과 어울리게 하라. 즐거움도 알게 하라. 게임에서 이기려고 스스로 힘을 짜내게 하라. 규칙을 익히고 더불어 사는 지혜도 얻게 하라. 발상을 전환하자. 호모에코노미쿠스 중심에서 호모루덴스 중심으로. 그것이 21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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