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이라크 늪 빠질라” 발빼는 美

"부시 재선위해 이라크인에 책임 전가" 미국의 이라크 정책은 `베트남화`의 과정을 밟아 가는가. 이라크 주둔 미군 병력 감축 계획에 이어 미국과 이라크 과도통치위원회가 조기 주권이양 시간표를 발표하자 미국의 이라크 `탈출 전략`이라고 지적하는 견해가 늘고 있다. 물론 미국의 지도부는 이라크를 베트남과 비교하는 데 신경질적인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16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이라크를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폴 브레머 이라크 최고 행정관도 이날 폭스 뉴스와의 회견에서 "미군 주도의 연합군은 내년에 이라크 과도정부에 주권을 넘긴 후에도 이라크에 남을 것"이라며 "우리는 황급히 도망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 치안 책임을 이라크 군대에 신속하게 이전하고, 이라크 헌법이 제정되기 전에 권력을 이라크 과도정부에 넘기겠다는 정책을 강조할수록 `베트남화` 과정을 더욱 연상시키고 있다. 30년 전쯤 베트남 전쟁터에서 미군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전쟁 비판론이 거세지자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 정부는 미군 전투병력의 점진적 감축을 모색했다. 월남군을 증원하고 그들에게 장비를 지원, 전쟁터에서의 역할을 증대시킴으로써 미군 철군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 `베트남화 과정`의 핵심이다. 미 국방부는 이미 내년 초부터 이라크 주둔 미군병력을 교체하면서 전체 병력 규모를 13만2,000명에서 10만 5,000명으로 줄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현지 주둔 미군 운용계획은 주권이양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며 "우리는 퇴각 준비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군에 대한 이라크 게릴라의 공격이 하루 30건을 넘어서는 등 날로 악화하고 있는 치안상황으로 인해 이 같은 호언이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부시 정부는 내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모든 대내외 정책 목표를 부시 대통령의 재선에 맞추고 있다. 미국의 언론은 철군이나 감군이 하루 1명 꼴로 미군이 죽어가는 상황보다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할 때 부시 정부가 이라크의 덫에서 빠져 나오는 정책을 더욱 가시화할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16일 "부시 대통령의 참모들은 점령 기간이 길어질수록 대선을 앞둔 부시 대통령에게 정치적 위험을 안겨 줄 것을 우려해왔다"고 지적했다. 이라크 주권 조기이양 계획도 이라크 상황의 관리 책임을 점령군에서 이라크인들에게 돌림으로써 부시 정부에 대한 비판의 완충지대를 설정하려는 대선전략의 일환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16일자 칼럼에서 "조기 주권이양 계획 발표는 보다 안정되고 민주적 정부를 만들겠다는 점령의 목표와 대선 전 미군을 위험한 길에서 빼내려는 욕구 사이의 갈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미국의 새 정책 이른바 `플랜 B`가 성공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영국 BBC 방송은 "아프가니스탄 과도정부가 선례가 될 수 있지만 이라크에는 국민적 지지를 받는 하미드 카르자이 같은 인물이 없다는 게 문제"라며"조기 권력이양은 시아파ㆍ수니파ㆍ쿠르드족 간의 분열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도 "이라크를 3개 지역으로 분할할 경우 내전 및 터키와의 전쟁 가능성이 있으며, 미군 철수 시에는 바트당이 재집권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유엔의 역할을 확대하는 계획도 미국이 주도하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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