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에요. 공부는 싫고 부모도 나를 미워만 해요."
지난달 저녁 SOS생명의전화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A대교 위에서였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B양이 극단적인 선택에 앞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줄 곳을 찾다가 우연히 근처에 있던 생명의전화를 든 것이다. 생명의전화 상담원 C씨는 전화기 너머의 자포자기한 상태의 목소리를 통해 위급한 상황임을 직감했다.
C씨는 이 전화가 중간에 끊기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려 사력을 다했다.
"참 힘들었겠구나. 왜 이제야 전화했니."
상담원 C씨는 B양의 하소연에 "맞아, 맞아, 나도 그랬어"라며 맞장구를 치며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격려도 해가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마디도 놓치지 않고 이야기를 들어줬다.
난생 처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B양은 절친한 친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마음속 깊은 고민까지 털어놓았다.
그제서야 B양의 목소리는 점점 차분해지고 안정돼갔다.
상담원 C씨는 그제서야 "네가 부모님께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경찰에게 협조를 요청해도 되겠니"라며 B양의 의견을 물었다. B양은 긍정 표시를 했고 이날 밤 늦게 부모에게 무사히 인계됐다. 한 시간 넘게 이어진 전화통화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앞두고 우연히 통화한 SOS생명의전화 덕분에 마음을 돌려먹고 새 삶을 사는 사례가 늘고 있다.
9일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에 따르면 2011년 7월부터 2015년 7월까지 약 5년간 SOS생명의전화 상담 건수는 3,679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 3,129명은 전화 통화 후 자살 등 극단적인 시도를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7명 가운데 6명 정도는 생명의전화 상담원과 대화를 나눈 후 마음을 돌려먹은 것이다. 2009년 교단에서 물러난 뒤 자살 시도자들의 전화를 받아온 최장숙(70) 상담원은 "순간적으로 살아갈 해답을 찾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분들이 있지만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얘기를 들어주다 보면 해답을 스스로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해답을 찾을 때까지 대화를 이어가는 게 우리의 역할인 이유"라고 말했다.
SOS생명의전화는 자살을 시도하려는 사람의 마지막 전화통화를 유도, 상담을 통해 마음을 돌리도록 하거나 자살 시도 광경을 목격한 시민이 신속하게 119 상황실에 신고할 수 있도록 전국 곳곳에 비치해둔 전화기다. 두 개의 버튼이 각각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와 한국생명의전화에 연결돼 있어 자살 시도자나 신고자가 전화를 걸면 상담·구조가 이뤄진다. 삼성·교보·한화 등 국내 19개 생보사들이 공동으로 사회공헌기금을 출연해 설립한 공익재단인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지난 2011년 7월 마포대교와 한남대교를 시작으로 2012년 서울 한강대교와 원효대교, 부산 광안대교, 춘천 소양1교 등 전국 총 15개 교량에 57대의 SOS생명의전화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오는 24일에는 성산대교에도 4대를 개통할 예정이다. 이시형 생명보험재단 이사장은 "앞으로도 생명보험재단은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10일은 자살예방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