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매일전쟁
안공혁 손해보험협회 회장
안공혁 손해보험협회 회장
지난 2003년 3월 이라크전이 시작된 후 올 11월 중순까지 전쟁에서 사망한 미군은 하루 2명꼴인 1,194명에 달하고 있다. 90년 걸프전 당시의 미군 사망자 382명에 비해 3배가 넘는 희생이다.
하지만 이라크에서의 미군 희생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전쟁이 우리 주변에서 매일 반복되고 있으니 ‘교통사고와의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9만6,000여명. 1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26명이 사망하고 사상자 누계가 부산시 인구에 해당하는 376만명에 달하니 전쟁도 이렇게 처참한 전쟁이 없을 성싶다.
물적 손실은 또 얼마인가. 2002년 교통사고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8.4조원으로 우리나라 1년 국가예산의 7.9%, 태풍 매미로 인한 피해의 2배에 달한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이렇게 막대한 인명과 경제손실을 가져오는 교통재해에도 불구하고 10년 전 9,482명이던 교통경찰관의 수는 이제 1만명을 조금 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다. 도로 연장거리도 32%나 늘어났고 자동차수도 2배나 늘어났지만 교통사고 감소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교통경찰관의 수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는 것은 교통사고 문제에 대한 정부의 인식에 큰 변화가 없음을 뜻한다.
일본의 경우 64년 동경올림픽을 전후해 자동차 증가와 함께 교통사고가 급속히 늘어나자 66년 교통안전에 관한 긴급조치법을 제정하는 한편 70년에는 교통안전대책기본법을 신설하고 총리실 산하에 강력한 통제조정기구인 ‘교통안전대책실’을 설치 운영해 교통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여나갔다. 90년까지 20여년간 교통사고 방지에 투여한 예산이 무려 160조원에 달한다.
교통안전과 관련된 업무가 각 부처로 분산돼 있고 그나마 총괄조정기능을 담당하던 국무총리 안전관리개선기획단이 최근 해체된 우리나라와 너무나 비교되는 상황이다. 일본의 이러한 체계적이고도 장기적인 교통안전 정책의 시행은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수 1.2명(한국 4.6명)이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교통사고 문제는 용수철과 같아서 단속을 강화하고 안전시설에 투자하는 만큼 사상자가 감소하지만 이를 느슨히 할 경우 여지없이 다시 늘어나는 특성이 있다.
이라크전 사망 미군의 13배나 되는 국민이 매일 사망하는 전쟁이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이제부터라도 교통사고 재난에 대한 정부 차원의 특단조치가 하루빨리 마련, 시행돼야 한다. 어떤 국가적 과제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보다 우선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입력시간 : 2004-11-24 16: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