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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용한 지 1년 된 스마트폰을 바꾸려던 직장인 박태기씨는 이달 초 휴대폰 양판점에서 갤럭시S4를 17만원에 구입했다. 출고가가 89만9,800원인 것을 감안하면 정부의 보조금 가이드라인인 27만원을 훨씬 넘는 금액을 지원받은 셈이다.
#. 2년이 넘도록 휴대폰을 바꾸지 않았던 자영업자 김동희씨는 최근 최신형 스마트폰을 24개월 약정으로 구입했다. 일부 보조금 지원을 받았지만 구입한 기기 값이 70만원이 넘어 당장 기기할부금액이 포함돼 나올 다음달 요금이 걱정이다.
정부의 보조금 규제 속에서도 음성적으로 진행되는 불법 보조금. 많은 스마트폰 구매 고객들은 박씨처럼 혜택을 보려고 하지만 극소수에 그치고 있다. 대다수 소비자들은 김씨처럼 일부 금액 지원을 받고 기기변경 또는 번호이동으로 휴대폰을 구입한다. 같은 조건의 소비자라 하더라도 박씨와 김씨처럼 휴대폰 구입시 지불해는 비용은 천차만별인 게 이동통신 시장의 현실이다. 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불합리한 보조금 규제가 시장 왜곡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휴대폰 보조금 정책의 허점으로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이 바로 소비자 간 차별화다. 같은 조건의 소비자가 각기 다른 혜택을 받는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실효성 없는 보조금 규제를 손볼 필요가 있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정부가 과도한 보조금 경쟁을 바로잡겠다는 명분하에 도입한 보조금 상한선(27만원) 규제가 가장 문제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동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맞게 보조금 제도를 유연하게 운용해야 하는데도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시장을 위축시키는 한편 선량한 소비자만 피해를 보고 있는데도 정부가 이를 묵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속→과열→단속의 악순환, 시장 왜곡 심각=최근 일부 가전 양판점과 대형마트에서 주말을 이용해 기습적으로 특판을 실시하는 등 보조금 시장이 다시 과열 양상을 보이자 방송통신위원회는 SK텔레콤과 KTㆍLG유플러스의 이동통신3사의 보조금 조사에 착수했다. 앞서 7월 방통위는 보조금을 과다 지급한 이통3사에 669억6,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고 KT에 대해서는 7일간 영업정지 처분을 내렸다. 올 1월부터 3월까지는 이통3사의 신규 모집을 순차적으로 금지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휴대폰 유통시장은 정부 단속에 따른 과징금과 영업정지로 잠시 시장이 얼어붙었다가 다시 보조금 경쟁에 불이 붙고 정부는 또다시 단속에 나서 과징금과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기 식으로 시장 왜곡 현상이 만연해 있는 형국이다. 배은준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실제 구매가격이 상승하기 때문에 보조금 규제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면서 "규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효성과 시장 현실이 반영된 정책으로 통신시장이 안정되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보조금 규제는 소비자나 제조사에 모두 부담이다. 구매부담이 커진 소비자들이 신제품 구매를 꺼리고 이럴 경우 국내 제조업체들의 판매량이 크게 줄어든다. 대표적인 사례가 팬택이다. 보조금 규제가 강화되기 이전만 해도 연 30만대 수준을 팔았지만 최근 들어 15만대 수준으로 급격히 줄었다. 이로 인해 창업자인 박병엽 부회장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고 800여명의 직원을 구조조정 하는 고통을 겪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와 국회가 보조금 폐해를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제정과 '전기통신사업법' 개정까지 추진하고 있어 단말기 제조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 법안에는 이통사 보조금은 물론 제조사들의 장려금 지급을 차단하고 필요시 제조사를 조사하고 제재한 권한을 갖도록 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제조사들은 이들 법안이 공정거래법과 중복돼 이중규제라고 주장한다.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는 "제조사를 조사하고 제재하는 방안이 법에 포함되면 공정거래법과 중복돼 이중규제가 될 수밖에 없다"며 "단말기 제조와 수익 자료를 공개하면 해외 이통사와의 협상에서 경쟁력도 잃게 돼 2차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시장 변화에 맞는 보조금 정책 개편 필요=전문가들은 보조금이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장치를 마련하고 보조금 자체는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27만원에 묶여 있는 보조금 상한선을 시장 환경 변화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이통사들이 자율적으로 소비자들을 위해 저렴한 요금제를 개발하고 제조사들도 불필요한 비용을 아껴 단말기 출고가를 낮추는 노력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진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하반기 이통사가 공식 보조금인 단말기 할부지원금을 폐지하자 대리점ㆍ판매점 등의 자의적 보조금이 확대되고 음성적인 보조금 규모가 커졌다"며 "시장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이통사만 규제하는 현행 제도는 불투명 보조금 근절에 한계가 있어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으로는 보조금을 법으로 규제하기보다 시장 논리에 맡겨 선진국처럼 규제보다는 자율에 방점을 찍는 방식으로 규제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용규 한양대 교수는 "시장 경쟁수단의 하나인 보조금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정부가 시장에 너무 관여해서도 안 된다"며 "정부가 이통사와 제조사의 보조금 정보만 잘 확보해 투명성을 확보하면 규제의 실효성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