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11월 18일] 이제는 복수노조 준비해야

지난 1997년 만들어진 현행 노조법은 최초에는 노동조합의 자유로운 설립을 허용하면서 기업 내 복수노조를 곧바로 허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그 적용을 5년간 유예했다. 그런데 그 상태는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노사 합의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국회가 제정한 법의 시행을 3차례에 걸쳐서 유예하며 헌법상 기본권인 단결권을 제한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허용하더라도 혼란가능성 적어 이제는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기업별 복수노조를 허용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복수노조 허용을 반대하기 위해 일부에서 정확하지 않은 정보, 심지어는 잘못된 정보를 무책임하게 유포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의 항공회사나 자동차회사가 복수노조 때문에 도산했다든지 복수노조로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에 기업 내 복수노조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 독일 등 유럽에서는 복수노조 설립이 법으로 금지돼 있다는 주장, 심지어 복수노조를 금지하는 것이 국제노동기준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세계적으로 기업별 복수노조를 법으로 금지하는 국가는 우리나라 외에는 찾기 어렵다. 그리고 이것은 명백하게 국제노동기준 위반에 해당한다. 세계 노동운동의 전체적인 흐름은 노동조합의 통합을 통해 단일노조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노동조합의 힘을 키워 사용자에 대한 교섭력을 강화시키기 위해서다. 이러한 움직임은 노동조합의 자주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지 법률에 의해 강제된 결과가 아니다. 일부에서는 내년부터 기업별 복수노조를 설립해야 하기 때문에 기업활동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그러나 법에서 기업별 복수노조의 설립을 허용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복수노조를 설립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간단한 이치를 모르고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인지 애써 무시하는 것인지 이유를 알 수 없다. 물론 현실적으로 복수노조가 허용될 경우 초래될 혼란을 우려할 수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직접적으로는 1963년부터, 간접적으로는 미 군정시기인 1946년부터 기업 내 복수노조 설립이 금지됐다. 짧게는 40여년, 길게는 60여년 동안 단일노조체제로 운영돼왔기 때문에 그러한 우려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복수노조를 허용하더라도 혼란이 초래될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첫째, 최근 우리나라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최근에는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복수노조로 조직이 분열되면 노동조합의 협상력은 더욱 약화될 것이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복수노조의 설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실익이 그다지 많지 않다. 둘째, 2월에 노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74%가 복수노조가 허용돼도 노조가 설립되지 않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셋째, 지금 상태에서도 최소한 107개 사업장에서 241개 노조, 17만명 이상의 조합원이 합법적인 복수노조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다만 기업별 복수노조가 전면적으로 허용될 경우 교섭 절차 등을 둘러싸고 일부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7월20일 제시된 노사정위원회의 공익위원안은 그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부작용 줄이는 방안 모색해야 이 안에 따르면 기업별 복수노조를 허용하되 개별 사업장 단위에서는 교섭창구를 단일화해야 하며 교섭창구 단일화는 원칙적으로 노동조합들이 자율적으로 하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에는 조합원의 다수에 의한 민주적 방법으로 교섭 대표노조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 방안은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현실을 고려하면서도 국제노동기준에도 부합하고 기업별 복수노조 때문에 미국ㆍ일본ㆍ캐나다ㆍ영국 등 각종 선진국에서 발생했던 문제점을 시정한 합리적인 것이다. 이 안을 중심으로 더 나은 지혜를 모으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동시에 우리가 유념해야 하는 것은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연합(EU), 호주, 뉴질랜드 등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데 복수노조 금지제도가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과의 FTA에서는 복수노조 금지제도와 같이 국제노동기준에 위반하는 경우 무역 제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복수노조 설립 금지의 철폐는 단순한 국내적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복수노조의 허용 시한을 2개월도 남기지 않은 지금 노사정이 솔직하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문제는 복수노조를 허용할 것인지가 아니라 허용할 때 나타날 수도 있는 부작용을 어떻게 최소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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