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 전세는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기 쉽지 않아 비교적 월세 전환이 느렸는데 갈수록 이 같은 법칙이 깨지는 모습입니다. 1%대 금리 시대를 맞아 전세 보증금 규모에 관계없이 월세 전환이 전방위적으로 빠르게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잠실동 P공인 관계자)"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리센츠. 전용 84㎡의 전셋값이 8억원에 달할 정도로 전세 보증금 규모가 커 그동안 월세로의 전환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기준금리 1% 시대를 맞아 보증부 월세를 선택하는 집주인이 꾸준히 늘고 있다. 잠실동 P공인 관계자는 "전세매물을 찾기 힘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세입자들이 150만~200만원에 달하는 고액 월세를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상 첫 1%대 기준금리 시대로 접어들면서 주택 임대차 시장의 대변혁이 예고되고 있다. 전세 시대 종말이 현실화되면서 더욱 가까워졌다는 전망이 그것. 새 아파트의 전셋값이 분양가를 뛰어넘는 사례도 전세 시대 종언의 한 단면으로 이미 '월세'가 한국의 보편적 임대차 거래 형태로 자리 잡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6.8% VS 1.75%, 불가피한 월세 전환=기준금리가 1%대로 내려앉으면서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현상이 더욱 급격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전세금을 받아 은행에 예금해봤자 이자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월세를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3월 들어 서울 단독·다가구의 경우 월세 거래 비중이 2월 53.9%에서 54.5%로 상승했다. 전체 주택 월세 거래 비중이 이 기간 동안 38.7%에서 42.3%로 올랐다. 서울 주택의 일 평균 월세 거래 건수 역시 1월 407건에서 2월 534건으로 늘더니 3월에는 14일까지 664건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감정원 발표한 지난 1월 서울 주택 전월세 전환율(전세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이율)은 6.8% 수준이다. 월세 물량이 늘어나면 전월세 전환율이 이보다 낮아질 가능성은 있지만 사실상 연 1%대인 은행 예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집주인이라면 뭉칫돈인 전셋값을 받아 은행에 묻어둘 이유가 더욱 사라진 셈"이라며 "전세를 유지하더라도 전세를 끼고 집을 산 초기에 불과할 것이고 대부분 월세로 돌려 임대수익을 거두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가율 90% 흔해져…깡통전세 경보=전세 매물 품귀 현상이 더욱 심화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깡통전세가 부지기수로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집주인이 부르는 호가가 곧 계약금액이 될 정도로 전세가가 치솟으면서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80~90%에 달하는 사례가 급속히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북·강동·양천·강남구 등 서울 전역에서 전세가율이 90%를 초과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북구 종암동 종암SK 아파트 59㎡의 경우 2월 최고 2억4,000만원에 전세계약이 체결되면서 실거래가와의 차이가 900만원에 불과하다. 전세가율로 따지면 96%가 넘는 수준이다. 강남구 역삼동 '역삼래미안'은 59㎡의 전세시세가 5억8,000만~6억3,000만원으로 매매시세(7억~7억2,000만원)의 88%에 육박하며 강동구 천호동 현대아파트 44㎡ 역시 전세가가 2억원대로 매매가의 90%에 달한다.
이런 가운데 월세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월세시세가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주택 전월세 전환율은 2011년 6월 8.6%에서 지난해 12월 6.9%, 올해 1월 6.8%로 꾸준히 낮아지는 추세다.
월세 시대 본격화는 기존 주택시장에서 핵심 변수다. 내 집 마련 수요 증가가 그것이다. 김현아 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은 "일부 세입자는 본인 상환능력 이상으로 대출을 끌어와 주거 상향이동을 할 수 있다"며 "전세난이 심화된다고 해서 전세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