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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운용처 없고 마진 줄어 여건 갈수록 악화
전략 수정·임원 교체… 중장기 계획 새판짤 듯
다른 보험사 "남의 일 아니다" 진단 결과 촉각
보험업계의 리더 격인 삼성생명이 10년 만에 경영 전반에 대한 고강도 외부 컨설팅을 실시하기로 한 것은 경영의 위험인자가 목까지 차오르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경기침체로 영업확장이 힘겨운 상황에서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자산운용까지 어려운 지경에 내몰리고 있고 이에 따라 실적악화가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삼성생명은 이런 위기감을 바탕으로 올 초 발표했던 '2020비전' 등 중장기 성장계획의 방향 및 목표설정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에 나서 수정이나 보완이 필요한 부분에 메스를 들이댈 것으로 보인다. 최소 2개월 이상이 걸릴 컨설팅 결과에 따라 경영기조나 전략의 방향 전환, 개별 사업부에 대한 구조조정 등이 단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보험업계에 미치는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올 하반기부터 상당수 보험사들의 경영난이 심각해지고 있는 만큼 삼성생명의 이번 조치가 업계에 비상경영이 본격화되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경영쇄신을 명분으로 한 명예퇴직 실시 등 내핍경영이 득세하고 각 사마다 비교우위에 따른 차별화 시도도 속도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적악화 현실화에 외부 전문가에 자문=삼성생명이 올리버와이만에 컨설팅을 맡긴 것은 경영악화가 빌미가 됐다. 삼성생명의 지난 6월 말 영업이익률은 4.50%로 지난해 6월의 7.50%에서 3%포인트나 하락했다. 같은 기간 국내 생보사업계 전체 영업이익률이 4.78%에서 3.62%로 내렸음을 감안하면 내림세가 더 가파르다. 이미 저금리 여파가 보험 계약을 비롯해 자산운용 실적 등 주요 지표에 짙은 그늘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보험사의 비즈니스 여건이 갈수록 안 좋다는 점이다.
당장 주력상품에 대한 비과세 혜택 축소, 과당경쟁에 따른 마진 감소, 운용수익 감소, 준법감시 및 위험기준자기자본(RBC)비율 규제 강화, 과거에 팔았던 고금리 상품에 대한 부담, 설계사 수당체계 변경 등의 악재가 난마처럼 얽혀 있다. 내년만 놓고 보면 뇌관이 반쯤 뽑혀나간 지뢰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성생명 경영진은 복잡한 실타래를 풀기 위한 첫 단추로 객관적인 경영진단을 받겠다는 해법을 내놓았다고 볼 수 있다.
◇악화된 경영여건 반영해 새 판 짜기 시도=삼성생명은 오는 2020년 자산 500조원, 매출 100조원(지난해 기준 자산 146조원, 매출 26조원)을 달성해 글로벌 15위로 도약하겠다는 2020비전을 재검토할 뜻을 밝혔다. 중장기 비전의 뼈대가 낙관적 기류가 강했던 지난해 작성된 만큼 달라진 경영여건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측면을 시정하겠다는 것. 손익과 성장성 여건이 악화된 만큼 수치가 조정될 여지가 큼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VIP, 해외사업, 은퇴시장 등 핵심 사업 전략도 다시 한번 들여다 볼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생명의 한 관계자는 "컨설팅 대상은 상품ㆍ영업ㆍ마케팅ㆍ고객서비스ㆍ해외사업 등 회사 전 사업 부문에 걸쳐 이뤄진다"며 "외부 전문가의 객관적인 시각으로 중장기 경영계획을 원점에서 재정립한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가 일종의 개혁을 위한 정지작업 성격이 있는 만큼 향후 일정 부분 내상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2002년 첫 외부 컨설팅 자문 이후에도 삼성생명은 역량강화를 명분으로 임원교체 등 인적쇄신을 단행했었다. 이번 컨설팅 결과가 파격적 변화로 수렴될 경우 단순 구호 수준의 비상경영을 넘어서는 조치가 현실화될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다른 보험사도 경영진단 촉각=금융회사들은 경영난의 돌파구를 찾을 때 외부 컨설팅의 처방을 구하고는 했다. 실제 올 상반기 삼성카드가 신성장동력 발굴을 명분으로 보스턴컨설팅그룹으로부터 경영진단을 받았고 현대라이프도 녹십자생명에서 새롭게 출발하면서 외부 컨설팅에 자문을 받았다. 앞서 지난해에는 삼성화재가 에이티커니에 장기보험사업과 관련한 컨설팅을 구했다. 삼성생명의 이번 조치가 강 건너 불구경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미 업계에서는 10년 만에 이뤄지는 이번 컨설팅 작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형 생보사의 한 관계자는 "성장 먹거리 발굴이 신통찮은 상황에서 경영여건이 나빠지고 있는 것은 똑같아 남일 같지 않다"며 "아직 내부적으로 경영진단 얘기가 나오지는 않고 있지만 조만간 비슷한 조치가 뒤따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 손보사 고위관계자도 "현재 악화일로인 시장 상황이 실적에 본격 반영되기까지는 시차가 있기 때문에 내년부터가 더 걱정"이라며 "내년도 사업계획을 수립하기 전에 경영점검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다른 금융업종은
지주사 "돈 굴릴 곳 없다" 비상경영 돌입
은행 등 대출수익 힘들자 리스크 관리에 총력
지난 9월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평균금리는 연 4.86%. 8월보다 0.04%포인트 떨어지면서 역대 최저치다. 기업대출금리 역시 8월보다 0.06%포인트 떨어진 5.30%에 그쳤다. 신규 취급액 기준 9월 중 예대금리차는 1.95%포인트로 전월(2.03%포인트)보다 더 축소됐다.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은행들이 과거만큼 수익을 쉽게 내기는 어려워졌다는 얘기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은행에 따라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50~66%에 이르는 상황에서 대출금리가 사상 최저치를 찍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시기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뿐 아니다. 저금리 기조에도 8월 대출금리가 되레 올랐던 저축은행의 일반대출금리도 9월에는 15.37%(잠정치)로 전월보다 0.18%포인트 떨어졌다.
그렇다고 저금리의 장기화 흐름이 쉽게 깨지기도 힘들다. 주요 선진국들이 저금리정책을 유지하는데다 돈을 너무 많이 풀고 있다. 경기부양을 위해 '나부터 살고 보자'는 흐름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김영도 금융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저금리를 계속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세계 공통의 기조"라고 말했다.
전세계의 저금리화는 개인은 물론 금융권으로서는 돈 굴리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기도 하다. 3%대 예적금이 주를 이루는데도 개인들이 은행에 돈을 맡기고 있는 이유다.
실제로 국내 예금은행의 올해 9월 말 정기예금잔액은 591조133억원으로 지난해 9월(563조695억원)보다 4.9% 늘었다. 같은 기간 적금은 23조5,791억원에서 22.7% 늘어난 28조9,537억원을 기록했다.
김영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경제성장률ㆍ투자수익률이 낮은 상황에서 자금운용으로 높은 수익률을 거둘 만한 곳이 없는데도 갈 데 없는 돈이 은행 등의 예적금으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출을 통한 신용창출은 더디다. 시중은행의 한 자금담당 임원은 "돈이 많이 풀려 있는데도 신용창출이 제대로 안 되고 있는 게 현 상황"이라면서 "가계와 기업의 대출수요가 없고 경기침체에 따른 부실을 우려한 금융권은 무작정 대출을 늘리기도 힘든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9월 중 은행의 가계대출은 8월보다 8,000억원 줄었다.
상황이 여의치 않자 금융지주회사들은 일제히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우리금융은 8월부터 대규모 투자를 억제하고 외화채권 발행 등 유동성 확보를 검토하고 있다. 모든 계열사의 경상비와 판매관리비를 최대한 아끼고 일정 금액 이상의 투자계획은 수익성 분석을 철저히 하는 등 그룹 전체가 비용절감운동에 들어갔다. KB금융도 경영혁신운동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의 경우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해 서민금융지원 확대와 가계부채 연착륙 지원, 윤리경영, 불완전 업무처리 개선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방침이다. 신한금융은 지주사 차원의 경영 관리와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이원호 신한은행 전략기획담당 부행장은 "경영여건은 앞으로 더욱 나빠질 가능성이 큰 만큼 자산건전성 관리에 더욱 신경을 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