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인증 때가 되면 필요한 교구나 장난감 등을 인증이 끝난 어린이집에서 모조리 빌려옵니다. 인증이 끝나고 나면 물건이 싹 빠져나가 어린이집이 텅 비죠."(경기도 A어린이집 교사)
"평가인증을 받을 시기에만 애들 식단이 제대로 갖춰지죠. 식단표만 그럴싸하고 실제로는 전혀 다른 식사가 나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물론 보육일지에는 식단표대로 나갔다고 기재하는 거죠."(서울 B어린이집 교사)
어린이집 보육의 질을 판단하는 수단인 어린이집 평가인증제도가 '눈 가리고 아웅' 식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실적이지 못한 평가지표, 자체점검과 하루 방문관찰에만 의존하는 평가방식, 눈속임으로 이익을 취하려는 어린이집 원장의 꼼수 등이 맞물려 좋은 취지로 도입된 제도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05년부터 어린이집 보육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평가인증제도를 도입했다. 점수를 높게 받아 정부가 인정하는 공공형ㆍ서울형 어린이집이 되는 경우 교사 급여를 비롯해 4대 보험료, 수백~수천만원에 이르는 기타운영비 및 환경개선비를 지급 받을 수 있다. 여력이 있는 어린이집이라면 이런 인증을 받으려고 하기 마련이지만 수많은 평가지표에 들어가는 노력과 비용이 만만치는 않다. 이런 상황에서 허위로 서류를 작성하거나 현장방문 당일의 모습에만 신경을 쓰는 등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경기 분당의 한 어린이집 교사는 "준비가 하나도 안 된 상태에서 일단 원장은 평가인증을 신청해버린다"며 "3개월 남짓한 기간에 70여 가지가 넘는 지표에 대해 서류를 작성하고 환경을 꾸며야 하기에 이 기간에는 새벽 퇴근하는 경우도 많고 피곤하다 보니 애들에게 신경도 덜 쓰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단기간에 서류를 급하게 만들다 보니 하지 않은 활동을 했다고 보고하는 식의 거짓 일지를 작성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현행 인증방식이 어린이집의 자체점검과 단 하루에 불과한 현장방문에 전적으로 달려 있어 실제 일어나고 있는 문제점을 찾아내기에는 역부족인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렇게 받은 인증은 별다른 행정처분을 받지 않는 이상 3년간 유효하다.
성남의 한 어린이집 교사는 "아이들과의 상호작용 등도 평가 대상이기에 평가 당일 말썽꾸러기 아동은 하루 쉬게 해달라고 부모에게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며 "평가 당일은 완벽한 모습일지 몰라도 금새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평가인증을 통과한 어린이집이 불법ㆍ부정을 저질러 적발되는 경우도 많아 부모의 불신도 높아지고 있다. 최근 불법 리베이트 등으로 서울 양천경찰서에 적발된 180여곳의 어린이집 중 94곳은 서울형 어린이집으로 인증 받았던 곳으로 알려졌다.
전문가 및 현장의 보육 교사들은 서류 등 형식적인 측면에만 치중하고 사후 현장관리에는 미흡한 현행 인증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금 방식으로는 서류 작성 등 눈에 보이는 지표를 가꾸는 데만 공을 들이게 되고 실제 어린이와 함께 할 시간을 늘리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은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평가 지표에 맞게 어린이집을 점검하는 과정에서 품질이 올라가고 그 품질을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 제도지만 현실적으로 잘 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 사실"이라며 "5월부터 지역별로 어린이집을 불시 방문해 점검하고 있으며 제도를 점검해 사후관리를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