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아이돌’ 노승열(20ㆍ타이틀리스트)은 차분한 성격 그대로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지만 이따금 그답지 않게 톤을 높였다. 내년 시즌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는 “정말로”, “진짜로”를 반복했다. 새삼 감격스러운 듯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웃음이 섞이기도 했다.
금의환향을 앞두고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행복하게 짐을 꾸리고 있는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 노승열과 8일 전화가 닿았다. 노승열은 지난 6일(이하 한국시간) 캘리포니아주 라킨타 PGA 웨스트에서 끝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퀄리파잉(Q)스쿨 최종예선에서 합계 15언더파 417타로 당당히 공동 3위를 차지했다. 6라운드 강행군을 펼쳐 상위 25위까지만 합격하는 ‘지옥의 레이스’를 여유롭게 통과한 것이다. 프로야구로 치면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셈이다. 풀시드를 거머쥔 노승열은 내년 시즌 타이거 우즈(미국), 루크 도널드(잉글랜드) 등 별들이 무수한 ‘꿈의 무대’를 마음껏 누빌 수 있다.
노승열은 “예전부터 PGA 투어에는 스물네댓 살에 들어가면 적당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일찍 들어가게 돼 정말 기쁘다”면서 “2008년 2차 예선에서 떨어졌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유럽투어 경험이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2007년 프로 전향 뒤 지난해 최연소 상금왕으로 아시안투어를 정복한 노승열은 같은 해 메이뱅크 말레이시아오픈에서 우승, 유럽투어 역대 두 번째 최연소 우승 기록으로 유럽 무대에서도 맹위를 떨쳤다. 노승열은 올 시즌에도 유럽투어 19개 대회에 출전해 3차례 톱10에 들었다. 그는 “Q스쿨 엿새 중 사흘 동안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다. 하지만 바람이 더 강한 유럽에서 뛰어왔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었고 덕분에 타수를 많이 잃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소년처럼 앳된 얼굴의 20세 청년이지만 필드에선 강심장인 그의 쾌거 뒤에는 부단한 노력이 숨어 있다. 노승열은 올 시즌 스스로가 “다 뜯어고쳤다”고 말할 만큼 과감하게 변신했다. 지난 2월 세계적인 교습가 부치 하먼을 만나면서부터 왼손그립을 ‘스트롱’에서 ‘스퀘어(중립)’로 바꿨고 백스윙 궤도와 임팩트 포지션까지 전부 바꿨다. 300야드가 우스운 장타자이지만 PGA 투어 진입을 위해서는 정확성이 필수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전에는 머리가 많이 움직이고 상체도 우측으로 많이 기울었는데 그런 부분들을 고쳤어요. 멀리치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버린 거죠.”
Q스쿨을 통과한 한국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낸 노승열이라 포부도 클 법했다. 특히 ‘올드 타이거’로 돌아온 우즈, 그리고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 리키 파울러(미국) 등 대표 영건들과의 경쟁에 관심이 쏠린다. 노승열은 “우즈랑은 연습라운드에서만 만난 적이 있다. 이제 자주 만날 텐데 그의 아이언샷을 가까이서 보고 배우고 싶다. 매킬로이, 파울러도 다 이겨보고 싶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목표도 정했다. “그런 선수들을 이기는 것에 앞서 적응이 우선이겠죠. 일단 자리를 잡고 나면 플레이오프 2차전까지는 꼭 나갈 겁니다.” 플레이오프 1차전에는 페덱스컵 포인트랭킹 125위 내 선수만 출전할 수 있고 2차전에는 100명만이 진출할 수 있다. 톱100 진입을 선언한 노승열은 9일 오후 귀국한 뒤 내달 초 다시 출국, 하와이에서 개막하는 소니오픈에서 설레는 데뷔 시즌에 첫발을 내디딘다.
Q스쿨 통과 뒤 최경주ㆍ양용은과 함께 하먼의 축하 연락을 가장 먼저 받았다는 노승열은 “누나(승은씨)와 함께 살 집을 캘리포니아 내에서 알아보는 중인데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하먼의 골프스쿨과 꽤 가까워 내년 시즌 내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든든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