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다 돼서야 오만 시브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비자를 받기 위해 줄을 선 동남아 여행객들 옆을 지나 취재진 일행은 유유히 입국심사대를 통과했다. 오만에서 한국인은 비자가 면제되기 때문이다. 입국장에 들어서자 대문짝만한 사진이 먼저 눈에 띄었다. 사진에는 지난 2000년 10월 오만LNG 플랜트 준공식에 온 김명규 전 가스공사 사장의 모습이 들어 있었다. ‘신드바드의 나라’ 오만은 이렇게 코리아를 특별대우했다. 수르는 멀었다. 아침 일찍 지프를 타고 남쪽으로 내달리기를 네 시간여. 한국 기업이 ‘가스 개발의 파트너’로 참여하는 오만LNG 플랜트까지는 수도 무스카트에서 400여㎞ 떨어져 있다. 오만은 치안이 안정돼 있고 도로도 잘 닦여 있었다. 옆에 탄 오승환 가스공사 과장이 “오만은 그동안 벌어들인 석유와 가스 개발 수입을 착실히 인프라 건설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황량한 모래벌판과 나무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기괴한 모양의 민둥산에 넌덜머리가 날 즈음, 차창 밖으로 ‘SUR’라는 도로표지판이 나타났다. 한산한 어촌도시인 수르 시내를 지나 10여분쯤 더 달리자 에메랄드빛 짙푸른 바다가 시선을 끈다. 그림 같은 바다를 배경으로 거대한 파이프 설비들도 위용을 드러냈다. 오만LNG 가스플랜트 현장이다. 정문에 마중나온 양동훈 가스공사 과장은 “이곳이 한국이 연간 400만여톤, 환산하면 20억달러어치를 사들여오는 중동의 대표적 가스플랜트”라고 소개했다. 그 물량은 한국 LNG 연간 소비량의 20% 정도. 가스공사가 오만에 파견한 직원 세 명 중 한 사람인 양 과장은 “오만에서 국내총생산(GDP) 기여도가 국영 석유회사에 이어 2위”라고 설명했다. 지금 연간 1,000톤가량의 LNG를 생산하는 굴지의 LNG공장이 들어선 이곳 수르는 7년 전만 해도 그저 평범한 아라비아 반도의 어촌에 지나지 않았다. 96년까지 오만은 이렇다 할 수요처, 즉 구매선을 확보하지 못해 가스전 개발에 나서지 못했다. 그러던 중 오만 정부는 귀가 번쩍 뜨일 만한 제안을 받는다. 천연가스를 대량으로 사갈 테니 내륙에 묻혀 있는 천연가스를 뽑아 올리자는 것. 가스 개발의 단초를 제공한 곳은 한국의 가스공사. 고려시대 무스카트의 아라비아 상인들이 벽란도를 찾아 무역을 했던 ‘코리아’가 다시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가스공사는 안정적인 LNG 확보를 위해 오만 정부에 연간 500만톤 남짓한 LNG 구매를 약속했다. 아울러 새로 설립되는 오만LNG의 지분 5%를 달라고 했다. 이를 토대로 오만 정부는 내륙 가스전을 개발하는 동시에 오일메이저인 셸의 기술을 들여와 LNG플랜트 건설에 나섰다. 세계 최초로 바이어(구매자)가 직접 참여하는 가스전 개발이 시작된 것이다. 플랜트 한가운데 있는 중앙통제실로 들어서자 오만인 엔지니어 네 명이 계기판을 들여다보느라 여념이 없다. CCTV 화면을 지켜보던 아메드 알 암리(32)씨는 “내륙에서 360㎞가 넘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이곳으로 가스가 공급된다”며 “영하 30~160도로 급속 냉각시켜 액체로 만든 다음 탱크에 저장한다”고 설명했다. 오만LNG의 트레인은 모두 두 개. 트레인은 내륙에서 수송되는 대형 가스관이 열차(train)처럼 길게 늘어선 모습에서 유래됐다. 한 트레인마다 연간 330만톤의 LNG가 생산된다. 천연가스는 오만 중부 사막에 있는 나히드ㆍ바락ㆍ앤드로 등 세 곳의 대형 가스전에서 나온다. 중앙통제실에서 나와 가스 냉각설비부터 내부 발전소까지 플랜트 투어를 하는 동안 근로자들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LNG공장답게 공정이 자동화된 때문이다. 따가운 햇볕을 받으며 바다 쪽으로 향하자 LNG 선적부두가 길게 늘어서 있다. 오 과장은 “한국에서 6만톤 규모의 LNG 운반선이 4~5일 간격으로 들어와 LNG를 싣고 간다”며 “가져간 LNG는 통영과 평택ㆍ인천 저장기지에 모인 뒤 공장이나 가정으로 보내진다”고 말했다. 공장 투어를 마친 뒤 사무실에서 만난 아모르 나세르 알마타니(40) 오만LNG 부사장은 “한국에 갈 물량을 최우선적으로 공급하고 있다”며 “잉여물량이 생기면 먼저 한국가스공사에 구매의사를 물어본 뒤 시장에 내다팔 정도”라고 설명했다. 공장 문을 나서며 되돌아본 오만LNG 플랜트 옆에는 칼하트 LNG플랜트가 보였다. 이 플랜트에서는 2년 전부터 연간 330만톤의 LNG가 생산된다. 지난해 한국에서 LNG 공급부족 사태가 발생한 적이 있다. 오만에서와 같이 사전에 가스전에 대한 투자나 구매계약을 했더라면 에너지 부족사태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