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4월 27일] 포도주와 비축

프랑스에서 손님을 초대하면 포도주를 고르는데 신경을 많이 쓴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음식보다는 포도주를 뭘 내놓느냐 하는 것으로 자신에 대한 대접의 수준을 판가름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프랑스에서는 포도주의 값이 정직해서 대체로 포도주의 값이 바로 그 포도주의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에 애매하면 좀 비싸다 싶은 것을 사서 내놓으면 대체로 성공한다. 한때 프랑스에 나와 있는 일본대사관은 좋은 포도주를 쌀 때 면세로 대규모 구입해서 지하보관소에 보관해 두었다가 한 십년쯤 지난 후 가격이 비싸졌을 때에 손님 접대용으로 내 놓는 것으로 유명했다. 대사가 새로 부임하면 새로 출시된 포도주는 사서 비축하고 본인은 한 삼대쯤 전 대사가 비축해 둔 포도주를 꺼내 사용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일본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표부 대사에게 초대되어 관저에 가서 저녁식사를 한번 하게 되었는데 쉽게 맛볼 수 없고 시중에서 한 병에 몇백만원 하는 최고급 포도주를 내놓는 것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이러니 프랑스 외교가에서는 일본대사가 초대하면 거절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 돼 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물자비축의 묘미이고, 오래될수록 값이 나가는 포도주는 비축이 가치를 발휘하는 대표적인 상품이다. 우리나라 같이 자원이 부족한 나라에서도 비축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때는 쌀이나 과일도 비축을 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한국석유공사에서 원유,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 주요 농산물, 그리고 조달청에서 각종 산업 활동에 사용되는 알루미늄ㆍ구리ㆍ주석 같은 원자재를 비축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래 신산업에 필요한 망간ㆍ인듐 등 희소금속의 비축 필요성도 날로 커지고 있다. 지난해 초까지 폭등세를 보였던 원자재 값이 최근 세계경기가 둔화되면서 50∼60%씩 빠져 있기 때문에 원자재 비축에 좀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원자재는 경기선행성이 있어서 경기가 조금만 회복될 조짐을 보이면 언제라도 다시 오를 가능성이 높아 지금처럼 가격이 떨어져 있을 때 비축을 늘릴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구리ㆍ우라늄 등 원자재를 공공연히 사들여 비축하면서 가격 상승기에 대비하고 있는 중국을 벤치마크 할 필요가 있다. 우리 같은 자원부족국이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해외자원개발을 통해 자급률을 높이는 것이다. 그러나 해외광구개발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재원에도 한계가 있다면 차선책은 쌀 때 시장에서 사서 비축해 두는 것이다. 거의 매년 반복되는 자원파동에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위기를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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