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ㆍ일 월드컵축구대회는 '강호들의 무덤'으로 역사 속에 남을 전망이다.32개국이 8개조로 나뉘어 한국과 일본에서 펼친 조별리그 48경기는 역대 어느 대회 때보다 많은 이변이 속출, 우승후보로 꼽혔던 팀들이 대거 탈락하거나 16강에 오르는 과정에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프랑스,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등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랭킹 '톱5' 가운데 3개팀이 떨어져 나갔고 이탈리아, 잉글랜드는 벼랑 끝에서 탈출했다.
우승 경험이 있거나 우승후보 물망에 올랐던 팀들 중 여유있게 16강에 오른 팀은 브라질, 스페인, 독일 정도에 불과하다. 특히 랭킹 1, 2위이자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프랑스와 아르헨티나의 조별리그 탈락은 충격 그 자체였다.
개막전에서 세네갈에 패하면서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웠던 프랑스는 우루과이와 예상밖의 0-0 무승부를 기록했고 결국 덴마크에 0-2로 완패하면서 1골도 넣지 못한채 1무2패의 참담한 성적을 냈다.
프랑스가 여유있게 조1위를 차지할줄 알았다가 망신을 당했다면 아르헨티나는 강력한 우승후보이면서도 쟁쟁한 본선 멤버들인 잉글랜드, 나이지리아, 스웨덴과 함께 '죽음의 F조'에 속해 처음부터 탈락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던 케이스다.
결국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첫판을 따내긴 했지만 '앙숙' 잉글랜드에 통한의 1골차 패배를 당한 뒤 꼭 이겨야했던 스웨덴을 압도적으로 몰아붙이고도 비기는 바람에 40년만에 16강 진출이 좌절됐다.
D조 1위가 예상됐던 강호 포르투갈도 첫 경기에서 미국에 충격의 패배를 당한 뒤 그 분풀이를 폴란드에 했지만 마지막 고비에서 한국에 덜미를 잡혀 서둘러 귀국행 짐을 꾸려야했다.
이탈리아와 잉글랜드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외줄타기를 하다 가까스로 한숨을 돌렸다.
이탈리아는 멕시코와의 마지막 경기를 겨우 비겨 1승1무1패로 탈락 일보 직전에서 기사회생했고, 1승2무를 한 잉글랜드의 경우 아르헨티나를 꺾지 못했더라면 탈락이 유력했다.
전통 강호들의 대거 탈락은 덴마크, 스웨덴, 멕시코, 세네갈, 터키 등 중위권 국가들과의 실력 차가 대폭 좁혀진데다 현대축구의 조류가 체력과 스피드의 싸움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아르헨티나와 프랑스처럼 뛰어난 개인기와 조직력을 갖췄다 해도 미드필드에서 쉴 새 없이 펼쳐지는 압박 싸움에서 상대를 압도하지 못한다면 예전처럼 쉽게 승리를 따내기는 불가능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최원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