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性範 산업부 차장각 부처별로 규제를 50% 철폐하라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강력한 지시에 따라 각부처가 규제완화에 발벗고 나서는 모습이다. 이번 만큼은 과연 규제완화가 성과를 거둬 국민들이 규제의 사슬에서 벗어나고 대한민국은 「기업하기 좋은 나라 생활하기 편한 나라」가 될 수 있을까. 현재까지 봐선 「글쎄요」다.
규제완화의 기치를 요란하게 내걸었던 YS시절과 비교해서 규제완화에 관한 한 달라진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규제에 대한 기본발상도 그렇고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의지가 과거보다 훨씬 굳건하다고 믿고 싶지만 단지 의욕만으론 충분치 않다. 패러다임의 획기적인 변화없이는 그 한계가 있는 탓이다.
우선 포지티브(POSITIVE)시스템을 근간으로 하는 현행 각종 법과 제도를 네가티브(NEGATIVE)시스템으로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게 선결 과제다. 포지티브시스템이란 「이건 된다」고 허용되는 행위를 나열하는 것이고, 네가티브시스템이란 「이건 안된다」며 금지된 행위를 정하는 방식. 포지티브시스템에선 각종 법령에 나열돼 있지 않는 경우 금지되거나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규제가 많아지지 않을 도리가 없는 셈이다. 근거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관청에서 퇴짜를 맞는 일이 잦은 것도 알고 보면 이 포지티브시스템의 덕택(?). 허용되는 일 말고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제도 자체가 관청의 인허가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관련공무원의 너그러운 해석이나 자비에 모든 게 맡겨지는 셈이다.
이 상황에서 규제개혁이 아무리 의욕적으로 이뤄져도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국민들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조금 넓어지는 수준에 그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관련공무원이 신이 아닌 이상 복잡다기하고 급변하는 세상일을 법과 제도로 완벽하게 짜맞출 수는 없는 일.
포지티브시스템은 행정의 효율도 크게 떨어뜨린다. 네가티브시스템이라면 금지된 일만 감시하면 그만이지만 포지티브시스템에선 법과 규정대로 됐는지를 일일이 확인해야 하고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행정관청들이 적은 인원으로도 고품질의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것도 행정부가 반드시 챙겨야 할 부분만을 철저히 챙기는 탓이다.
「이건 된다」는 발상에 기초한 법과 제도를 「이건 안된다」로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규제완화는 그 성과를 거두기 어렵고 행정서비스의 질을 높이긴 어렵다는 얘기다.
규제개혁의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현재처럼 정부주도의 규제개혁은 태생적인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주체가 돼 있는 상황에선 건수위주의 규제완화 말고는 크게 기대할 게 없다. YS정권시절 규제완화가 요란한 구호에 비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도 이 때문.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고나 할까.
인허가로 공무원들이 덕(?)보는 일을 막는 일도 규제완화가 성공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부정부패척결은 규제완화와 동전의 앞뒷면이라는 이야기다. 예산배분방식도 조직위주에서 서비스활동위주로 재편해야 만 규제완화가 성공할 수 있다.
YS정권의 실패를 이번 정권에선 되풀이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