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환경규제와 기업 R&D


2013년은 기업들에 생존경쟁의 시한이 통보된 한 해였을 것이다. 화학물질등록및평가에관한법률(화평법)이 제정되고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이 개정돼 2015년 시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화학물질관리를 선진화하고 화학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 국민의 건강과 환경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의 두 법안이 막상 현실에 대입되니 산업계의 반발이 거세다. 과도한 등록절차와 비용으로 인해 기업의 생산성이 저하되고 신물질 및 신제품 연구개발이 지연돼 결국 기업 생존을 위협하고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얘기다.

신화학물질관리규정(REACH)이라는 비슷한 환경규제를 시행 중인 유럽연합(EU)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해 보인다. 지난해 6월 영국의 전문 컨설팅 기관 CSES가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리치 규제로 인해 기업경영 위험이 증가했으며 특히 규제 준수에 드는 비용 부담 때문에 신물질 개발을 중단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 또 응답 기업의 40%는 리치 규제 시행으로 기업 혁신이 오히려 악화됐다고 답했다.


유럽의 사례는 우리 산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도 최근 화평법ㆍ화관법 외에 재생자원 사용 의무화(자원순환사회전환촉진법), 오염피해에 대한 배상책임 부과(환경오염피해구제법) 등 새로운 환경규제 도입이 가시화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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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세계경제 성장이 둔화되는 상황에서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잦은 환경규제가 시행될 경우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 위축이 우려된다. 환경규제 준수 여건이 성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규제가 시행되면 기업의 기술개발 욕구와 사업화 의지가 위축될 것이다. 유럽에서도 리치 시행에 따른 중소기업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행정ㆍ비용 지원 문제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또 산업계와 충분한 교감을 할 시간이 부족하다. 현재 관계부처가 모여 '화평법 하위법령 협의체'를 구성ㆍ운영 중이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이제 1년여밖에 남지 않았다. 6년에 걸쳐 의견을 수렴한 EU도 아직 보완할 부분이 많다고 한다.

마이클 포터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적절하게 설계된 환경규제는 기업의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혁신을 달성하며 환경보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포터 가설을 주장한 바 있다.

물론 환경규제가 일정 부분 기업의 기술개발 욕구를 자극해 새로운 사업화를 견인하는 긍정적 측면도 존재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규제에 대한 수용능력이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다. 경제가 어렵고 산업여건이 미성숙한 상황에서 현재와 같은 동시 다발적인 새로운 환경규제가 진행되거나 외국에 비해 과도한 규제가 도입된다면 기업은 규제대응 비용조달 때문에 R&D 등 혁신을 위한 투자를 미룰 수밖에 없고 결국 혁신의지를 가진 기업들의 산업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부디 2015년 동시다발적으로 시행될 환경규제가 기업의 R&D, 중소기업 혁신을 가로막지 않도록 해 우리 정부와 산업계가 포터 가설을 증명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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