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산책] 봄에 만난 까치

목필균<시인>

‘보라 저 까치집 드높은 가지 위에 저렇게 정결하고 소박한 집은 없다~.’ 이 ‘까치집’은 박희진 시인의 시에 변규백님이 곡을 붙인 것인데 해마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즐겨 가르치는 노래이다. 간결하면서 고상한 가사에 부르기 쉽고 아름다운 곡으로 아이들도 무척 좋아하며 즐겨 부른다. 오늘 우연히 이 노래의 가사처럼 드높은 나뭇가지에 정결하고 소박한 집을 짓는 까치들을 만났다. 학교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보도블록 위에 마치 잔가지치기를 한 것처럼 나뭇가지 조각들이 떨어져 있었다. 일부러 사람이 가지치기를 한 것이라 하기에는 그 양은 적었지만 화단길을 따라 느티나무ㆍ단풍나무 아래에 나뭇가지가 계속 떨어져 있었다. 그것도 나뭇가지의 맨 끝쪽의 잔가지들이다. 난 참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깍깍’거리는 소리에 놀라서 돌아보니 까치가 잔가지 하나를 입에 물고 나무 위로 오르는 것이다 ‘아하! 저 많은 나뭇가지들을 자른 것이 까치였구나’ 하는 생각이 번득 들었다. 그러고 보니 단풍나무 위에 이제 막 짓기 시작한 까치집이 두채나 있었다. 까치들이 봄을 맞이해 알을 품을 둥지를 만드는 것이다. 새삼 자연의 신비를 맛본 것 같아 신선한 느낌이었다. 발걸음을 더 천천히 걸으며 떨어진 나뭇가지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주둥이로 수없이 쪼아서 잘라낸 흔적이 막 물이 오른 나뭇가지에 역력히 남아 있었다. 단숨에 필요한 나뭇가지를 자르는 것은 분명 아니었다. 까치는 자기 집에 쓰일 적당한 나뭇가지를 고르면서 나르는 것 같았다. 아무리 힘들게 자른 것이어도 자기 몫이 아니라면 그대로 두고 필요한 것만으로 집을 짓는 까치를 바라보며 허영심과 게으름에 빠져 있는 나는 많은 것을 깨달았다. 주둥이로 쪼아서 자르기에는 꽤 두꺼운 나뭇가지에 수없이 박힌 주둥이의 흔적에 그 노역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저렇게 부지런히 입으로 쪼아서 잘라낸 가지를 다듬어서 비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 제 집을 짓다니. 진한 감동이 가슴에 인다. 미물이라 생각되는 새들조차 제 식구 거느릴 준비로 새벽부터 부지런을 떠는데…. 해마다 늘어가는 결손가정 아이들의 그늘진 모습이 비유적으로 떠올랐다. 초등학교 입학식에 혼자서 책가방을 매고 왔던 일곱살 꼬마 가희의 모습이 선명하다. 생활고로 달아난 엄마, 술로 세월을 보내는 아빠 때문에 할머니댁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근근이 살아가는 가희 자매의 아주 작은 몸집들. 그 아이들의 깨진 둥지가 무척 안쓰럽기만 했었다. 그리고 땀 흘리는 노동의 가치를 모르고 차라리 노숙을 택해 서울역 일대를 배회하는 설익은 지식인들의 궁핍한 모습도 떠오른다. 사람 못된 것은 짐승만도 못하다고 하던가. 노력하지 않고 안일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봄에 만난 까치는 편례(遍例)교훈을 주는 것 같다. 늘 오가며 사계절을 몇번이나 밟아온 출근길 교정. 무심히 스쳐갔던 일이었을 텐데…. 우연히 이 봄에 만난 까치들이 무심한 내 마음 밭에 새순을 돋게 한다. 삭막한 도심지 학교에서도 까치는 제 입으로 집을 짓고 새끼들을 키우는 자연의 섭리가 지켜지고 있다는 사실. 이런 경건한 노역의 현장을 바라보며 깨우치는 삶의 진리를 심호흡으로 깊이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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