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성 줄인 화장품·세제 재료로<br>노닐페놀 안쓰고 세정력 등 기존 고급제품보다 월등
| 한국화학연구원 김형록 박사팀이 세계 4번째로 개발한 친환경 비이온 계면활성제는 중합도 분포가 좁아 유효성분 함량이 최대 71%에 이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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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푸ㆍ세제ㆍ치약ㆍ화장품ㆍ잉크ㆍ농약. 이것들에 공통적으로 함유된 화학물질은 무엇일까.
정답은 계면활성제다. 계면활성제는 계면(界面), 즉 서로 혼합되지 않는 물질들의 경계면을 무너뜨려 하나의 물질로 묶어주는 화합물을 말한다. 친수성과 친유성을 모두 겸비해 물과 기름처럼 절대로 섞이지 않는 물질도 계면활성제의 힘을 빌면 어느새 일심동체가 된다.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계면활성제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화장품과 세제. 화장품은 주성분이 물과 기름이기 때문에 계면활성제의 도움 없이는 생산이 불가능하며 세제의 경우 세정력의 원천이 계면활성제이므로 세제가 곧 계면활성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종류는 음이온ㆍ양이온ㆍ양쪽이온ㆍ비이온으로 구분되는데 비이온 계면활성제가 환경적 독성이나 피부 자극이 적어 관련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000년대 초만 해도 비이온 계면활성제의 주축은 석유화학 부산물인 노닐페놀계였다. 이는 대표적인 환경호르몬(내분비계 장애물질)으로 환경은 물론 인간에게도 극히 유해한 성분이다. 게다가 당시의 노닐페놀계 계면활성제는 세정 등에 작용하는 유효성분이 27~45%에 불과하다는 치명적 한계까지 지니고 있었다. 샴푸를 예로 들면 10g으로 머리를 감았을 때 최대 7.3g이 아무런 역할도 못하고 버려졌다는 얘기다.
한국화학연구원 그린화학연구단의 김형록 박사는 "계면활성제는 계면활성 성분의 작용범위(중합도 분포)를 최대한 좁혀야 주방세제, 샴푸, 화장품 유화제 등 용도에 맞춰 최적 효과를 발휘하는 제품을 설계할 수 있다"며 "하지만 당시 국내 기술력으로는 이것이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가정용 세제임에도 음식물 제거에 효과적인 계면활성 성분은 50% 미만이고 나머지는 샴푸 등 다른 용도에서 필요한 성분으로 채워진 것이다.
지금도 이런 상황이 계속되고 있을까. 물론 아니다. 이 같은 현실에 주목한 화학연 김 박사팀이 계면활성제 전문기업 동남합성과 공동으로 두 가지 문제를 완벽히 해결한 친환경 비이온 계면활성제 생산기술을 개발했다.
독일ㆍ일본ㆍ미국에 이어 세계 4번째로 개발된 이 기술은 노닐페놀계 물질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혼합금속 산화물 촉매를 통해 좁은 중합도 분포를 구현, 유효성분 함량이 55~71%에 이른다. 김 박사는 "실험 결과 이 기술로 생산한 계면활성제는 세정, 유화력, 표면장력 저하능, 생분해성 등에서 기존 고급제품보다도 월등한 우위를 보였다"며 "분말세제로 만들 경우 사용량을 20% 줄여도 동등 이상의 세정력을 발휘했다"고 밝혔다.
이 기술은 현재 동남합성에 의해 상용화돼 유명 화장품기업 A사의 고급 샴푸와 화장품 등의 재료로 공급되고 있으며 국내 제품의 고급화와 차별화, 계면활성제 사용량 감소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화학부문 장영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2007년부터는 우리나라에서도 노닐페놀 사용이 중단되면서 기술적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상태다.
김 박사는 "아주 작은 기술적 변화로도 세상을 바꾸는 원천이 되는 것이 바로 화학 소재 기술"이라며 "앞으로도 사회적 스트레스를 줄이고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영역들을 찾아 연구 역량을 집중해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