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채 발행, 공공차관 도입 등 공공 채무시장에 민간 채무조정 방식 도입이 가시화되면서 신용이 나쁜 나라에 비상이 걸릴 조짐이다. 민간 채무조정 방식은 신속한 채무 재조정 등의 장점도 있지만 자금 제공에 시장 논리가 엄격히 적용되는 특징으로 인해 이 같은 방식이 공공 채무시장에 본격 도입될 경우 신용도가 낮은 나라는 지금보다 더 비싼 이자를 요구 받거나 아예 돈줄이 끊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 국제통화기금(IMF)과 주요 선진국들은 빚을 갚지 못하는 나라의 외채 문제를 민간의 채무조정 방식을 도입해 신속히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해 왔다. 미국의 법정 워크아웃 제도인 `챕터 11`과 같은 방식을 국가 부도에도 적용한다는 것인데, 멕시코가 이머징마켓 국가 중에는 사상 처음으로 민간 채무조정 방식을 도입한 국채 발행에 나섰다. 이와 관련, 멕시코 정부는 지난 24일 10억 달러 규모의 달러표시 국채를 발행하면서 `집단행동조항`(CAC: Collective Action Clauses)을 포함시키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CAC는 특정 채무에 대한 채권자 그룹의 채무조정을 신속히 할 수 있도록 소수 채권자의 소송 등을 제한할 수 있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현재 부상하고 있는 국가 채무조정 방안은 크게 두 가지로 CAC 외에 해당국의 채무를 일시적으로 동결해 금리를 낮추고 상환 기간을 늘려 채무를 조정하는 `국가채무조정장치`(SDRM: Sovereign Debt Restructuring Mechanism)가 있다. SDRM은 IMF가 적극 지지하는 방식으로 부도에 몰린 채무국의 채권자 가운데 75% 이상이 동의하면 반대한 채권자도 의무적으로 합의를 해야 한다. 이에 반해 미국이 적극 지지하는 CAC는 국가채무 전체에 대한 재조정 작업인 SDRM과는 달리 채무 재조정 대상이 특정 채무에 한하며, 특히 소수 채권자의 소송제기 등을 제한 하는 게 특징이다.
시장에서 국채를 발행하거나 공공차관을 도입할 때 이런 내용의 집단행동조항을 미리 삽입해 놓으면 위기 때 채권단의 내부 잡음을 줄여 신속하게 채무 재조정을 추진할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IMF와 선진국들의 이 같은 움직임으로 인해 결국 신용이 나쁜 나라는 국제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다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모든 채권자는 채무국이 채무조정을 신청할 경우 손해를 볼 수 있으므로 빌려주는 단계에서 심사를 더욱 철저히 하고 위기가 감지되면 채무국에 대해 미리 빚 독촉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운식기자 woolsey@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