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법질서 바로 세우자] <하> 국민 속에 파고드는 소프트파워 강화

강압적 '하드파워' 만으론 한계… "국민 마음을 움직여라" <br>'준법행위 인센티브' 등 도입 "지키면 이익" 공감대 넓혀야<br>돈·권력에 예외없는 법 집행 정책 일관성으로 신뢰회복을




우리 경제가 개발시대를 거치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왔지만 실상 압축 고도성장의 뒷면에는 '반칙의 역사'라 할 정도로 왜곡된 모습이 드리워져 있었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법과 규칙'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그렇기 때문일까. 정부의 설문조사 내용을 보면 국민 10명 중 9명은 '법보다 돈ㆍ권력이 더 세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70%가 '법은 공평하지 않다'고 답했고 3명 중 한 명은 '법대로 살면 손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정책이 일관성을 잃으면서 법의 신뢰도를 떨어뜨렸고 사회 지도층의 잘못에 대한 이중적 법 집행으로 법의 힘이 무력해졌다. 한국 사회가 처한 법질서 위기는 곧 신뢰의 위기, 정부의 위기, 국가경쟁력의 위기이기도 하다. 갤럽이 매년 실시하는 조사에서 한국인의 공공부문신뢰지수는 최하위 수준을 맴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2006년 실시한 조사에서는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신뢰지수가 3.2로 낯선 사람에 대한 신뢰지수 4.0을 밑돌기도 했다. 슬픈 현실이다. 노동과 자본력 집중에 따른 경제성장은 한계점에 도달했다. 법질서 준수와 청렴도ㆍ투명성 등 사회자본을 키워 선진국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사회갈등이 사회자본 형성을 가로막고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29일 라디오 연설에서 "정치적ㆍ사회적 갈등과 분열상을 극복하지 않고는 우리나라가 선진화되기 참 어렵다고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법질서 확립은 경제성장의 중요한 인프라다. 이는 국민들에게 '법은 지키는 것이 이익이다' '법은 공평하고 엄정하게 집행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야 가능하다. 과거의 획일적 단속과 처벌 등 통제 위주의 강압적 하드웨어 파워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들이 신나서 법질서를 스스로 세워나갈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속을 파고드는 '소프트파워'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법을 지키는 것이 이익인 사회=산업정책연구원(IPS)이 평가한 우리나라의 법질서지수는 66개국 중 중간인 30위권이다. 법을 지키는 것보다 지키지 않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에 나온 결과다. 동아시아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불법시위를 통한 의견 수용률이 42.4%로 합법시위(28.2%)보다 두 배 가량 높았다. 이러다 보니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불법시위가 난무하고 이에 따른 손해는 고스란히 국가 전체, 국민 모두에게 전가된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발길을 돌리고 국가 브랜드 가치가 떨어진다. 유엔무역개발협의회(UNCTAD)가 조사한 2006년 우리나라의 외국인직접투자(FDI) 잠재력 순위는 세계 17위권이지만 실제로는 47위권에 머물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FDI 비율은 1.0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4.56%)을 크게 밑돈다. 외국인 투자를 가로막는 가장 높은 장애물은 노사관계(31%)다. 국가브랜드 가치도 GDP의 37%인 3,510억달러로 일본의 6분의1 수준이다. 세계적으로는 32위권이다. 법을 지키면 그만큼 이익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단속과 처벌' 중심의 강압적 정책만 펼쳐나가면 '안 걸리면 그만'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진다. '법은 지킬수록 이익'이 되도록 함으로써 스스로 법을 지키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1991년부터 준법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각종 포상 등 인센티브를 도입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경쟁법 자율준수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으며 '준법행위 인센티브제(준법 마일리지)'를 통해 기업에 다양한 혜택을 주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채찍보다는 당근이 국민 스스로 법을 지키는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킬 수 있다. ◇법 앞에 돈과 권력이 평등한 사회=국제투명성기구가 기업인들에게 공직자의 청렴도를 물은 결과 우리나라의 뇌물공여지수는 2002년 21개국 중 18위, 2006년 23개국 중 21위 등 최하위권이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조사한 공직자청렴도 순위에도 OECD 국가 중 21위에 그쳤다. 국민들이 스스로 법질서를 준수하도록 하려면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절실하다. 돈과 권력에 대한 예외 없는 법 집행으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법에 대한 불신감을 깨뜨려야 한다. 정부는 7월1일부터 새로 적용할 뇌물ㆍ배임ㆍ횡령 등 8가지 범죄의 양형기준을 정했다. 사건 유형별로 형량 범위를 미리 정해 유전무죄, 고무줄 형량, 솜방망이 처벌 논란을 불식시키겠다는 의도지만 부정부패 사범에 대한 지속적인 단속과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 국민적 반감이 큰 고소득층 탈세자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법이 집행돼야 한다. 법 앞에서 돈과 권력을 내려놓게 만들어 사회 전반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여야 경제주체 간의 거래비용도 줄고 사회적 신뢰도 공고히 할 수 있다. 집회와 시위, 그리고 기초생활질서에 대한 법집행도 엄정해야 한다. 법절차를 지키는 집회와 시위는 법의 힘으로 보장하되 법을 벗어난 불법집회는 법의 힘을 보여주는 철저한 법 집행이 시급하다. 생활질서 기반 조성을 위한 기초생활질서 법준수 의식 확대도 요구된다. ◇정책 일관성, 신뢰회복으로 소프트파워 강화=세계은행에 따르면 선진국들이 부자가 되는 데는 물질적인 자본의 역할이 1~3%에 불과했다. 도로ㆍ항만ㆍ기계 등 사회간접자본(SOC)이 만들어낸 자본은 17%에 그쳤다. 나머지 80%는 보이지 않는 자본, 사회자본의 몫이었다고 분석했다. 21세기 경제성장의 원동력인 사회자본은 ▦법치주의 확립 ▦부패방지대책 마련 ▦시장경제원칙 확립 등을 통해 쌓인다. 사회갈등 해소를 위한 ▦권력분산으로서 내각책임제와 지방분권 확대 ▦정치개혁 ▦NGO 활성화 등도 필요 요소로 꼽혔다. 법치주의 확립은 정부의 일관된 정책과 국민들의 신뢰회복을 전제로 한다. 특히 21세기 수평적 네트워크 시대에는 정부가 법질서 확립을 강조하면서 일방적 밀어붙이기식 단속과 처벌보다 '경청과 공감'을 통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소프트파워를 강화하는 일이 절실하다. ■ 법질서 확립 英·네덜란드 사례 보면… 강력한 리더십에 '타협과 합의' 도 병행 신속한 결정후 단호한 법집행… 대화·협력통해 사회적 대타협 #사례1. "범죄는 범죄고, 또한 범죄다" . 1981년 런던 남부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키자 당시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단호한 대응을 주문했다. 신속ㆍ과감한 의사결정과 단호한 법집행을 강조했다. 개혁정책에 대한 반발로 지지율은 급락했지만 개혁 프로그램을 관철시켰다. #사례2. "계속 대화하고 협력하고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1982년 네덜란드의 경영자 대표인 반빈과 노동자 대표인 빔 콕은 인간적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 끝에 '바세나르 협약' 에 합의했다. 네덜란드의 '타협와 합의' 의 정치문화가 전통으로 자리잡는 순간이었다. 민주화와 경제발전으로 가는 과정에서 대립과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부작용이다. 지역ㆍ계층ㆍ세대ㆍ이념 간 갈등이 중첩되면서 각 집단이 제 몫 찾기에 나서면서 집단행동이 만연하게 된다. 경제 위기의 파고가 높을수록 집단행동은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면서 결국 법질서를 와해시킨다. 법질서 확립을 위해서는 국가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또 법질서 위기상황을 타개해나가야 한다는 사회적 통합과 합의를 도출해내는 작업도 필요하다. '대처리즘' 으로 일컬어지는 대처 총리의 일관된 정책기조 집행은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고 장기번영의 초석을 마련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대처 총리는 경제활력을 저해하는 '영국병' 이라는 영국형 사회주의를 극복하는 데 주력했다. 확고한 법질서 확립과 기업가 정신 고취, 철저한 시장원리 도입을 앞세웠다. '경제의 성패는 기업의 성공에 달려 있고 정부가 할 일은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기반을 조성하는 것' 이라는 명제를 분명히 하고 작고 강한 정부를 정책 기본방향으로 설정했다. "나쁜 제도에 집착하기보다는 한시라도 빠른 개혁이 좋다" 며 신속ㆍ과감한 의사결정을 통해 바꿔나갔다. 국민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치밀한 전략을 세워 위기를 정면 돌파해나갔다. 반대의견에 대해서는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제압했다. 이를 통해 국민소득을 2배 이상 높였고 유럽 제2의 경제부국으로서의 토대를 다졌다. 위기에 처한 법질서를 사회적 대타협으로 극복한 네덜란드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네덜란드는 지역별 위원회를 중심으로 간척지 제방축조 작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수평적 협력문화를 축적해나갈 수 있었다. '계속 대화하고 협력하고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는 정신에 따라 경제ㆍ사회 문제를 해결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지켰다. 국회의원 대부분이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관료들은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등 공정성과 청렴성을 철저히 유지했다. 정치가는 타협능력을 최고의 덕목으로 내세웠고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일관된 경제정책을 유지할 수 있도록 협력했다. 법질서 확립에는 강력한 리더십과 국민들이 함께하는 '타협과 합의' 의 정신이 필요하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모든 정책은 갈등과 함께 간다. 갈등프리(Conflict Free)는 없다 "며 "갈등과 친해지고 갈등이 벌어진 다음에 대비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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