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000660)와 제일모직의 대규모 자사주 매입 발표가 시장의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가운데 올 들어 실시된 상장사들의 자사주 매입이 주가를 떠받치는 데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분석됐다. 자사주 매입을 발표한 기업들 중 73%가 신고일 대비 주가가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실적과 투자 등 기업가치 상승을 동반하지 않는 주가 부양책은 단기 처방에 그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나왔다.
23일 한국거래소와 금융조사업체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올 들어 자사주 매입을 신고한 유가증권·코스닥 상장사(우선주 제외)는 총 81곳으로 신고건은 92개로 집계됐다. 자사주 매입이 주가상승의 호재로 작용한다는 공식은 대체로 맞는 것으로 드러났다. 92건 중 68건에서 자사주 매입 신고 이후 현재까지 모두 주가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주가 상승률은 20.49%에 달했다.
가장 많이 오른 곳은 케이티스(058860)로 지난 2월12일 자사주 매입을 신고한 후 150% 뛰어올랐다. 뒤를 이어 사람인에이치알(143.33%), 우노앤컴퍼니(170.49%), 한양디지텍(99.71%), 성창기업지주(000180)(93.44%), 동국제약(90.15%) 순으로 상승폭이 컸다. 하재석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매입은 주가안정과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 장점을 가진다"며 "특히 배당과 달리 주가 수준과 업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 주주환원정책으로 많은 기업들이 선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전날 대규모 자사주 매입을 발표한 SK하이닉스는 모처럼 반등에 성공했다. SK하이닉스가 밝힌 자사주 취득 예정 주식 수는 2,200만주이며 예상 취득 기간은 23일부터 10월22일까지다. 이날 SK하이닉스의 주가는 장 초반 5.5%까지 뛰어올랐다가 전날 대비 2.09% 오른 3만9,000원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의 주가는 반도체 업황 부진과 실적 우려 등으로 6월 이후 전날까지 25% 급감하며 내리막을 걸어왔다.
송명섭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자사주 매입량은 일 거래일 평균 37만주로 최근 일 거래량의 10% 수준이라 충분히 주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규모"라며 "당분간 주가를 안정시키고 앞으로 D램 가격 안정에 따른 주가 반등 시 상승폭을 키우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SK하이닉스에 이어 제일모직도 이날 자사주 250만주를 장내 매수하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주가 향방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삼성물산과의 합병 승인을 계기로 보다 신속히 주주친화정책을 펼쳐 주주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결정했다"고 말했다. 제일모직의 주가는 17일 삼성물산과의 합병 이후 이날까지 12.4% 급락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자사주 매입이 단기 효과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실적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지혜 교보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매입 후 수익률이 부진한 종목은 실적 부진이 뒤따랐다"며 "실적이 받쳐주지 않는 단순 주가 방어 목적인 경우 자사주 매입 효과가 낮다"고 말했다.
실제 1월29일 자사주 매입을 신고한 삼성전기(009150)는 부진한 실적 전망에 신고일 대비 현재까지 주가가 18.94% 하락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윤태 삼성전기 사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회사 주식을 사들이며 부양 의지를 보였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금융조사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기의 2·4분기 영업이익은 843억원으로 시장 컨센서스(900억원)를 크게 밑돌 것으로 전망된다. 조진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갤럭시S6 관련 부품 출하가 기대 이하로 부진하고 세트 원가 절감 노력으로 부품 가격 하락세가 두드러질 것"이라며 "기판·카메라 부문의 수익성이 기대치를 밑돌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4월27일 자사주 매입을 신고한 내츄럴엔도텍(168330)은 가짜 백수오 사태로 미래 성장성에 대한 신뢰를 잃으면서 신고일 대비 주가가 38.22% 떨어졌다. 이는 올 들어 자사주 매입을 신고한 상장사 가운데 가장 큰 폭의 하락세다.
김재은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매입 종목 중에서도 실적과 업황에 따라 주가 반응이 엇갈릴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일관성을 유지하며 자사주 매입을 진행하는 종목의 경우 안정적인 현금을 창출해낼 수 있다는 경영진의 자신감으로 판단할 수 있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일관성 있게 자사주를 매입한 기업은 SK C&C, 삼성생명(032830), 삼성화재(000810), 제일기획(030000)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