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 줄여도 자녀 위한 지출은 유지
가처분소득서 사교육비 비중 14% 40~50대 은퇴 이후 대비 꿈도 못꿔
저성장까지 겹쳐 중산층 기반 흔들… 학력 인플레 해소 등 대책 서둘러야
서울 사당동에 사는 주부 김모(50)씨는 요즘 외식을 끊다시피 했다. 한 달에 200만원가량 들어가는 아이 2명의 사교육비 때문이다. 김씨는 "남편 월급이 오르는 속도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아이들한테 들어가는 사교육비가 늘어나는 속도가 2배 이상 빠르다"면서 "당장 밖에서 쓰는 것을 줄이지 않고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사교육비는 마르지 않는 화수분 같다. 계층상승 사다리가 점점 끊어지고 있는 가운데 교육은 그나마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지원이라는 오래된 믿음이 견고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가계에 비상사태가 발생해도 사교육비는 웬만해서 줄지 않는다. 문제는 자녀 교육에 인생을 걸다시피 한 중산층이 노후비용을 사교육에 저당 잡히면서 중산층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저성장에 빠진 우리나라의 경제 현실을 떠올리면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의 부작용은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사교육비가 경제 전반에 주름을 지우고 있다"며 "중산층을 중심으로 소비와 저축을 늘릴 수 있도록 공교육 정상화를 포함한 전방위 해법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7배인 40대 사교육비…중산층일수록 더 힘들어=사교육비 부담은 중산층일수록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무리하게 사교육에 열을 올리면서 빚어진 현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0대 가구주 월소득 대비 자녀 1인당 사교육비 비중은 △200만~300만원 6.36% △300만~400만원 6.05% △500만~600만원 5.80% 등으로 소득이 높을수록 부담이 낮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지난 1990~2013년 소득계층별 총소비지출에서 교육비지출 비중을 따진 결과 중산층이 7.5%포인트 늘어 고소득층(6.0%P), 저소득층(5.1%P)보다 증가폭이 컸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지출은 유별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분석을 보면 우리나라 40대 가구의 가처분소득 대비 교육비 지출 비중은 14%(2003~2013년 평균)로 미국(2.1%)의 7배 수준이다. 평균 소비성향도 대부분 국가에서는 노후 대비에 치중하는 40~50대가 가장 낮은 반면 우리나라는 40대가 사교육비 지출에서 다른 연령대를 압도했다. 고교 3학년 자녀를 둔 40대 직장인 이모씨는 "서울 대치동·목동 학원가에서는 대입전형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컨설팅해주는 패키지가 유행"이라며 "보통 200만~300만원은 족히 드는데 월급쟁이 부모를 둔 학생들도 상당히 많이 받는다"고 귀띔했다. 그는 "남이 사교육을 하면 부담돼도 안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버푸어·에듀푸어 양산으로 중산층 기반 약화=사교육의 폐해는 경제 성장 둔화와 맞물려 본격화될 여지가 크다. 은퇴가 임박했지만 노후 대비가 미흡한 중장년층은 물론이고 자녀 교육에 허리가 휘는 30~40대, 상당한 교육비를 들였음에도 취업에 실패한 20대 등 전 연령대에서 어려움이 나타날 수 있다. 과도한 사교육비가 중산층에서 탈락하는 계층을 늘리고 미래 중산층이 될 예비계층의 두께도 얇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권규호 KDI 연구위원은 "우리 경제의 주축인 30~40대의 교육비 지출이 많은데 당장 이들의 소비가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이들 세대가 고령층이 되는 시기에는 민간소비가 더욱 제약돼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80%가 넘는 높은 대학 진학률 역시 산업계의 일자리 수급과 맞지 않는다"며 "현실과 따로 노는 학력 인플레이션 때문에 취업난이 더 극심해져 사교육의 낭비와 비효율은 더 커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