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양지와 음지

우현석 <정보산업부 차장>

지난 21일 광주에서 생활고를 비관한 30대 가장이 아들을 살해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22일자 신문들은 직업이 없던 이 남자가 6개월 전부터 각종 세금과 방세 등을 못 낼 정도로 생활고를 겪어왔다고 보도했다. 이 남자는 5살짜리 아들을 흉기로 찌르고 자신은 목을 매 숨졌다. 생활고로 인한 동반 자살이 심심치 않게 발생해 이제는 더이상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도 못하는 터에 이 기사에 다시 눈길이 가는 것은 하루 상관으로 교차한 또 다른 기사 때문이다. 23일자 신문의 또 다른 면에는 주요 백화점들의 경우 경기침체로 매출이 감소하는 와중에도 돈을 많이 쓰는 ‘우수 고객’은 오히려 증가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신세계백화점은 전체 고객 중에서 구매금액으로 상위 1%를 차지하는 슈퍼VIP(SVIP) 고객 수가 작년보다 8.8% 증가했고 이중 강남점은 SVIP 고객 수가 작년보다 19.8%나 늘어났다.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의 경우 연간 3,500만원 이상을 구매, SVIP로 분류된 고객이 지난해 328명에서 올해는 364명으로 11% 늘었다. 또 백화점 명품 코너들에는 한 개에 2,000만원짜리 핸드백을 사겠다는 고객들이 수백명이나 몰려 아예 대기순번을 정해 기다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고 자살하는데 같은 하늘 아래 또 한 켠에서는 가진 돈을 주체 못해 몸살이 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그동안 언론들이 되뇌어왔던 ‘가진 사람들이 돈을 안 써 경제가 이 지경이니 돈을 쓸 수 있도록 사회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해보인다. 가진 사람들은 열심히 돈을 쓰고 있는데도 경제는 갈수록 안 좋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외국산 명품이라는 게 많이 팔아봤자 백화점에도 떨어지는 마진이 적은 ‘얼굴마담’ 상품인데 소비는 그나마 거기서만 일어나고 있으니 내년 경기전망이 올보다 나아지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가진 사람의 소비도 중요하지만 중산층과 서민들의 소비가 살아나야 체감경기가 개선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만큼 정부는 이제 경제정책의 초점을 한곳에 확실히 맞춰야 한다. 언론도 여론몰이식 보도에서 벗어나 경제현상과 사실(Fact)에 근거한 보도를 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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