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이야기가 있는 미술] 기발한 발상의 전환… 일상 사물이 예술품 되다

한국서 개인전 여는 佛 미술가 베르트랑 라비에<br>자동차 문짝에 푸른색 덧칠<br>의자 뒤집어 조각으로 전시<br> 상상력 넘치는 작품들 흥미

프랑스 작가 베르트랑 라비에. 옆의 작품은 '월트디즈니 프로덕션' 시리즈로 디즈니사의 흑백 만화 '모마(MoMA)에 간 미키'에 등장한 가상의 현대미술품을 라비에가 재현한 것들이다. /사진제공=아뜰리에 에르메스


마르셀 뒤샹은 전시장에 남성용 소변기를 가져와 '샘'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심지어 자신의 서명까지 남겼다. 작품이 예술가의 손맛이 깃든 창작의 결과물이라는 통념을 깨고, 일상적인 사물도 예술가의 명명(命名)을 통해 예술품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었다. 프랑스 출신 베르트랑 라비에(Bertrand Lavierㆍ사진)는 이 마르셀 뒤샹의 기발함을 잇는 적통(嫡統)이자 197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유럽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는 생존 예술가로 꼽힌다. 서울 강남의 신사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라비에의 지난 30년을 보여주는 대규모 개인전이 '팬텀'이라는 제목으로 막이 올랐다. 벽에 걸린 파란색 작품 '피카소 울트라마린'은 자동차 문짝에 작가가 색을 입힌 것. 라비에는 1990년대 시트로엥 자동차사가 파블로 피카소의 '서명사용 저작권'을 구입해 '시트로엥 피카소' 자동차를 출시한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는 실제 차를 구입해 '피카소 서명'이 적힌 문짝을 뜯어내 그 위해 '반 고흐식 거친 붓터치'로 '이브 클랭의 블루(IKB)'에 가까운 푸른색을 칠했다. 시트로엥 명품 자동차에 피카소와 반 고흐, 이브 클랭 그리고 발칙한 라비에가 공존한 작품이다. 조각가 알렉산더 칼더의 조수가 만든 칼더풍(風) 모빌은 라비에가 색칠을 함으로써 한낱 '짝퉁'에서 역발상의 명작으로 거듭났다. 그 옆에는 요셉 앨버스의 진품 판화에 '또' 라비에가 덧칠한 '그린 컴포지션'이 있다. 수십 개 에디션 중 하나이던 판화가 특별함을 갖게 됐다. 맞은 편의 추상화는 이케아(IKEA) 식탁보에서 몬드리안의 화풍을 발견한 라비에가 덧칠로 완성한 작품이다. 미술 거장 몬드리안과 이케아의 기성품을 접목하는 이런 식의 작업을 라비에는 '접붙이기'라 부른다. "두 종자에서 전혀 새로운 종자를 얻어내는 과정처럼, 예술과 일상의 '접붙이기'로 본질을 찾아간다"고 작가는 얘기한다. 라비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을 얻고 이를 자유롭게 표현한다. 커다란 화폭에 흰 붓질이 가득한 작품은 추상화가 싸이 톰블리나 한국의 이우환을 상상케 한다. 사실은 유럽에서 공사중인 빈 건물임을 표시하기 위해 유리창에 흰 페인트를 칠한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출력했다. 살바도르 달리가 1930년대 여배우의 입술에서 착안해 만든 푹신한 빨간 소파를, 라비에는 마릴린 먼로의 입술을 떠올리며 플라스틱 조각으로 제작해 '냉동고' 위에 전시했다. 좌대(座臺)가 주는 조각의 위엄까지도 냉동고로 날려버렸다. 디자이너 마크 뉴슨의 '엠보리오' 의자를 뒤집어서 '조각처럼' 전시했고, 보슈(Bosch)사의 톱날절단기는 자연사 박물관의 '고대 유물처럼' 배치했다. 용도가 바뀐 전시품들에는 기업 경영이나 업무 이행에도 적용할 수 있는 기발한 상상력과 창의력이 꿈틀댄다. 미술사적 지식이 있다면 더 재미있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흥미롭다. 6월27일까지. (02)544-7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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