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이옥경 칼럼] 창조경제와 크리스마스 실(Seal)

이옥경 미래창조과학부공무원노조 위원장

“석유가 많이 나는 쿠웨이트가 참 부럽습니다. 우리 한국에는 지하자원이랄 것이 거의 없고, 가진 것이라곤 인력뿐인데…”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학교에서 중동 산유국에 대해서 배울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도 그 평범한 말을 쿠웨이트 우정국 공무원에게 했다. 2006년 태국에 있는 아·태 우정대학에서 교육을 받을 때였다. 그러자 아직도 내 기억에서 맴도는 당연한 말로 쿠웨이트 공무원이 대답했다.


“우리는 한국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다는 그 뛰어난 인력이 부러울 뿐입니다.”

지난 반 세기 동안 우리나라는 엄청나게 발전했다. 우리 자신의 과거사라서 무덤덤한 일상이 되어버린 세계적인 경이, 바로 ‘한강의 기적’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한국에 석유도 철광석도 아닌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지만 지금은 쿠웨이트보다 경제 규모가 더 큰 나라가 아닌가. 인적 자원만으로 이룬 성과다.


필자가 속한 우정사업본부도 한국의 모든 분야와 어깨동무하며 발전해 왔다. 1884년 우정총국에서 시작되는 그 역사는 올해로 130년이 된다. 100년이 넘는 고목의 역사를 살펴보면 말 그대로 국민과 함께 울고 웃었던 시간이다. 전쟁 때에는 군대에 나간 가족의 소식을 전했고 경제개발 시대에는 직장에 다니는 자녀의 소식을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전했다. 그렇게 우정사업본부의 발자취는, 어쩌면 우리가 매년 매달 찢어낸 수많은 달력을 이어 붙여 만듬직한 큰 시간의 우편봉투 안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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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거기에 과거의 우표를 붙이고 봉투를 닫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역동적인 현대는 기회이자 위기이다. 다가오는 100년 동안 없어지는 직업이 많다는 뉴스는 알고 보면 살벌하다.

모든 것이 변하는 시대적 추세에 따라 정부에서는 창조경제를 화두로 내세웠다. 그 방향은 옳지만, 구체적인 모습이 잘 잡히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공무원의 한 사람으로서 우정사업본부가 어떻게 변하면 좋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창조라는 답은 여전히 옳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고이 간직하려 방 안에 가지고 들어오면 녹아버리는 눈송이처럼 창조란 것이 원래 실체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분명하다. 쿠웨이트 공무원이 부러워하는 한국의 뛰어난 인력이 미래 창조경제의 핵심이라는 것, 그래서 올바른 창조경제란 인재 중심의 경제에서만 얻어질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창조의 아이콘으로 회자하는 스티브 잡스도 인문학과 기술의 결합을 강조했다. 인문학은 바로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그렇다면 현재 우정사업본부 공무원들이 겪고 있는 우체국 인력 효율화는 결코 창조경제라 할 수 없다. 단순 효율성만 추구하는 그런 구조조정은 창조경제라는 탈을 쓴 후진경제일 뿐이다.

보다 여유로워야 한다. 그래서 성찰하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애플이나 구글의 직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보라. 일할 때는 열심히 해야 하지만, 전자메일 속에서 사라진 우표의 가치를 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것이 창조를 위한 사람 중심의 경제이다.

역사를 담아 미래로 보낼 편지에 과거의 우표를 붙이지 말자. 우표 옆에 크리스마스 실(Christmas seal·결핵 퇴치 기금을 모으기 위하여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발행하는 우표)을 붙였듯이, 효율성 옆에 사람 중심의 실을 붙이자. /이옥경 미래창조과학부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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