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톱스타인 배우 고수와 한효주는 최근 현대미술가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신작 영상작품 '묘향산관(가제)'에 출연하기로 결정하고 다음달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 신인배우인 경우 데뷔 초기에 소규모·소자본의 비주류 '예술영화'에 출연하면서 연기경험을 쌓은 뒤 주류 상업영화로 진출하는 행보가 흔하지만 이들 정상급 배우의 선택은 '역행(逆行)'이다. 게다가 'A급 몸값'으로 분류되는 이들이 과감히 무상출연을 선언했다. 이들과 협업하는 문·전 작가는 앞서 지난 2012년 세계 최고 권위의 미술행사로 5년에 한번 독일에서 열리는 미술축제인 '카셀도큐멘타'에 한국 작가로는 20년 만에 초청됐던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다. 이들 작가는 같은 해 광주비엔날레에서 대상 격인 '눈(Noon) 미술상'을 받았고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 2012'에 선정되기도 했다. 톱스타들의 유명세에 편승할 심산으로 이들 배우를 캐스팅할 필요가 없는 작가라는 것. 그렇다면 이들 엔터테이너와 순수예술가가 손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배우들은 정상의 위치에서 자기 영역의 확장이나 새로운 도약·도전이 필요했고 작가들은 함축적인 작품에 연기력을 갖춘 전문배우가 절실했던 점이 서로 통했다. 중국 베이징에 있는 북한 식당을 배경으로 여종업원과 남한 화가의 만남을 그리는 이번 작품 '묘향산관'은 오는 8월 일본 후쿠오카아시아트리에날레를 시작으로 국내가 아닌 해외 영화제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한국에서의 이름값은 해외 전시장에서 유명무실하다. 하지만 고수와 한효주는 국내외 드라마·영화팬을 넘어 해외 예술계에 자신들을 선보이며 새로운 수요층을 형성할 기회를 얻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 기발한 의상과 도발적인 콘셉트로 유명한 미국의 팝스타 레이디 가가는 지난해 말 발표한 정규 4집 '아트팝(Art Pop)'을 기획하면서 순수예술가들을 끌어들였다. 앨범 표지에 등장하는 가가의 조각상은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의 작품. 쿤스는 지난해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조형작품 '풍선으로 만든 개(Balloon Dog)'가 5,840만달러(약 630억원)에 낙찰되는 등 생존작가 최고의 작품 값을 자랑한다. 가가는 또 세계적인 행위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협업해 나체로 요가 퍼포먼스를 벌여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아브라모비치는 행위예술과 신체자각을 결합한 새로운 방식의 퍼포먼스를 개발했고 가가가 이를 표현해 전세계적으로 이목을 끌었다. 이 협업으로 가가는 '전라노출'의 선정성에 대한 비판을 피해간 것은 물론 파격적인 그의 기행에 예술의 이름으로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순수) 예술은 숭고하고 고귀하고 값지다'는 통념이 대중예술의 가치를 동반 상승시킨 사례다.
◇극과 극은 통한다=상업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순수예술과는 엄격히 구분되는 대중문화계의 '스타'들이 순수예술가와 잇달아 손잡고 있다. 작품 간 협력 사례는 많았으나 이 같은 사람 간의 교류는 새로운 추세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는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이 극과 극이라지만 결국 통하는 것이고 이들이 접점 찾기를 거듭해야 '새로운 것'이 생긴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가장 고급스러운 미술로 꼽히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경우 고가의 미술재료를 수입하고 거래하던 상인이 예술가들과 교류한 결과물이며 그 여파로 작품 값이 급등하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양 교수는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구분은 인위적일 뿐 자본주의하에서 상업적 가치가 없는 순수예술로만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상업예술이라고 해서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엔터테이너들의 순수예술에 대한 관심 못지않게 순수예술가들도 대중문화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미술가 정연두는 3월13일부터 서울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개인전을 여는데 걸그룹 크레용팝을 추종하는 팬덤을 소재로 한 신작 '팝저씨'를 선보일 계획이다.
28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서 개막하는 '사진, 한국을 말하다'의 '3부:사진과 미디어' 전에는 배우 조인성의 대형 인물사진이 전시될 예정이다. 한진그룹 산하 일우재단이 선정하는 일우사진상 수상자인 박종근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조인성은 기존 화보와 사뭇 다른 내면을 보여준다. 이 같은 작품은 관람객이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른바 '이해하기 어려운 현대미술'이 삶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을 해결할 실마리가 된다. 안소연 삼성미술관 플라토 부관장은 "예술과 삶의 접목은 친근한 재료를 사용, 관객과 가까운 장소를 이용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대중문화를 활용하는 것 또한 대중과 유리된 예술을 복원하는 한 방법"이라며 "예술은 대중과 경계 허물기를 시도하고 대중문화는 더 숭고한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데 그 상반된 흐름이 만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독립 큐레이터 김지연씨 역시 "연예인의 위상이 달라지면서 예전에는 스타에 대한 호기심을 다룬 팝아트가 주류였다면 이제는 배우나 가수의 본질에 초점을 맞춰 그들의 활동 '맥락'을 다루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아트프리미엄'으로 새로운 수요 창출=배우 이정재는 국립현대미술관 홍보대사다. 미술관의 과천 본관과 서울관을 연결하는 광역 셔틀버스를 비롯해 미술관 개장과 폐장시간에 친근한 그의 목소리로 안내 멘트를 들을 수 있다. 배우 정려원은 서울시립미술관 홍보대사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CJ E&M이 3월 방송 예정인 미술가 발굴 프로그램 '아트스타 코리아' 진행자로 낙점됐다. 이들 두 배우는 외부행사가 없더라도 전시 개막식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진짜 애호가'다. 배우 이광기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으로 미술가들과 협업해 실제 작품활동을 하는가 하면 아이티 지진피해 돕기 자선경매를 매년 진행하면서 미술품 경매사로 데뷔하기도 했다. 이광기는 "예술가와 내가 서로 갖지 못한 콘텐츠를 교류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대중이 원하는 더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톱스타가 컬렉터(미술품 수집가)로 변신할 경우 실질적인 '돈'을 불리게 된다.
톱스타의 컬렉터 활동은 자신의 명성을 높일 뿐 아니라 수집작품의 부가가치까지 끌어올린다. 컬렉터로 유명한 영국 팝스타 앨턴 존은 앞서가는 안목을 인정받아 경매에서는 그가 소장했다는 이력만으로 낙찰가가 급등하는 프리미엄 효과를 얻었다.
그의 소장품을 모은 '앨턴 존 컬렉션'의 국내 전시도 물밑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팝스타 마돈나는 멕시코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을 광적일 정도로 수집했다.
마돈나는 프리다 칼로 작품의 후광효과로 여성 인권 등을 두루 생각하는 지적인 문화인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앤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 부부가 세계 각지에서 열리는 굵직한 아트페어에 전용기를 동원해 '작품 쇼핑'을 하러 다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미술평론가인 홍경한 월간 '아티클' 편집장은 "대중문화가 예술에서 명분을 찾는 '상업의 예술화'나 순수예술이 자본의 힘을 빌리는 '예술의 상업화'는 자본주의에서 당연한 현상"이라며 "특히 '상업·상품의 예술화'를 통해 소비자는 미화된 상품을 사면서 마치 예술을 산다고 여기며 더 많은 지출을 아까워하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