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아산 탄생 100년] <1부> 시대가 제2, 제3의 정주영을 부른다 <4> 국민기업의 탄생

신갈 IC… 26만톤급 유조선… 한국경제 도약 상징

아파트·자동차로 '거주·이동' 새 지평… 국민 일상을 바꾸다

오랜 기간 브랜드 정당성 인정받아 삼성·포스코와 함께 국민기업 꼽혀

그룹분할로 이미지 상당부분 희석… 이익만 좇지 말고 사회 생각해야

1976년 생산을 시작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포니 생산 라인. 현대차는 첫 고유 모델인 포니를 시작으로 포니엑셀과 엘란트라·아반떼 같은 국민차를 잇달아 선보이며 성장가도를 달렸다. 현대자동차의 고유모델 시리즈의 추진력은 1980년대 후반 이후 ''마이 카 시대'' 개막과 국민 생활의 변화를 앞당겼다. /사진제공=현대자동차




두 장의 사진이 여기 있다. 경부고속도로 신갈IC와 26만톤급 유조선 진수식 장면이다. 촬영 시점이 1969년과 1974년인 이 사진들은 40대 이후 세대에게는 낯익다. 우리 경제의 도약을 상징하며 각급 학교의 교실마다 오랫동안 걸려 있던 이들 사진은 현대=국민기업 이라는 이미지까지 낳았다. 신갈IC가 뻗어 나가는 한국의 기상을 담고 있다면 선진국에서나 가능하리라고 믿었던 거대한 유조선 건조는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자부심을 불어넣

었다. 한국의 자동차와 선박은 오대양 육대주의 바다와 도로를 누빈다. 현대 신화와 국민기업 탄생의 바탕에는 아산 정주영의 고유 모델 자동차에대한 집념과 허허벌판의 갯벌을 세계 최고의 조선소로 키워낸 추진력이 여전히 살아서 숨쉰다.

현대·삼성·포스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군이다.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도 이들 기업은 아는 경우가 많다. 현대와 삼성·포스코는 또 다른 공통점도 갖고 있다. 국민의 기대를 받는 '국민기업'이라는 점이다. 빅데이터 전문분석 회사인 다음소프트가 지난 2008년부터 2014년까지의 소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현대·삼성·포스코가 '국민기업'으로 가장 많이 언급됐다. 여기서 '국민'은 사전적 의미 대신 '모두가 동의할 만한, 한국을 대표하는'이라는 뜻으로 기업이라는 명사를 꾸며주는 일종의 수식어다. 그렇다면 대기업이 국민에게 사랑 받는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


국민기업이라는 키워드에서 가장 중요한 전제는 '많은 사람의 일상과 인식을 바꾼 기업' '폭넓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기업'이라는 이미지다. 캐나다 앨버타대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조직이론가인 마이클 라운즈버리는 대중에게 이런 이미지가 각인되려면 특별한 조건의 충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오랜 기간 브랜드 정당성을 견고하게 인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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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정주영과 국민기업 현대의 탄생=아산 정주영은 국민의 실생활에서도 두 가지를 크게 변화시켰다. '거주'의 개념과 문화를 바꾸고 '이동'의 신지평을 열었다. '아파트 공화국'으로 불리는 한국의 주거문화는 아산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일제 시대에 처음 등장한 이 땅의 아파트는 1970년대 초중반까지 가난한 서민의 집단주거지 정도로 여겨졌다. 1970년 4월에는 준공된 지 불과 4개월밖에 안 지난 와우 아파트 한 동이 통째로 무너지는 사고가 터져 인식은 더욱 떨어졌다. 변화의 시발점은 현대건설. 1970년대 중반부터 표준화한 건축공법을 활용해 '아파트는 편리하고 살 만한 곳'으로 인식을 전환시켰다. 압구정 아파트 특혜분양과 투기를 야기하는 부작용을 낳았지만 현대가 선보인 아파트로 인해 주택난 해결과 토지이용의 효율 증대라는 정책 목적도 부수적으로 따라왔다.

최초의 국산 고유 모델 자동차 개발 역시 교통발전과 도시 인프라 구축을 크게 앞당기면서 '마이 카' 시대를 열었다. 아산이 첫 고유 모델인 포니 자동차를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자동차전시회에 출품하면서 "앞으로 5~7년 뒤면 우리 회사(현대자동차)의 반장급들도 자기 차를 갖게 될 것"이라는 예상은 시기만 3~5년 늦춰졌을 뿐 제대로 들어맞았다. '마이 카' 시대는 국민의 일상도 크게 바꿨다. 회사와 일에만 매달리던 가장들이 자가용으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다음소프트가 분석한 빅데이터(소셜데이터)상에서 현대의 이미지가 '안정' '행복' '최선' 등과 같이 바람직한 가치표준과 결부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국민기업에 걸맞은 행동이 필요하다=소셜데이터 분석 결과 대중은 삼성·포스코도 국민기업으로 손꼽았다. 삼성의 경우 가전·모바일폰을 비롯한 일상형 기기를 생산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포스코는 오랜 가난을 딛고 한국의 선진화를 주도한 중공업 경영의 대표적 사례로 각인돼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세 기업 모두 외부환경의 급변에도 굴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타났다. 그러나 국민기업 감성 연관어를 살펴보면 상위 30위 내에 불법·의혹 등 부정적 키워드도 눈에 띈다. 국민기업은 이미지에 걸맞지 않는 기업활동이 밝혀질 경우 더욱 혹독한 평가를 받는다. 상대적으로 높은 도덕적 요구 기준에 미달했을 때 소비자는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는 것이다. 빅데이터 분석 결과 아산이 씨 뿌린 '국민기업 현대'라는 통일된 이미지는 그룹분할이 이뤄지면서 상당 부분 희석된 것으로 보인다.

◇이익만 좇지 말고 사회를 생각해야=최근 공유가치 창출을 의미하는 CSV(Creating Shared Value)가 경영 키워드로 각광 받고 있다. 기업이 수익창출 이후에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 활동 자체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면서 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경영학과 교수는 2011년에 CSV 개념을 발표하며 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했다. 기업 생존을 위해서도 국민의 삶과 사회를 동시에 변화시킬 수 있는 전략이 더욱 절실하다는 권고다. 고전(古典)이 '오래된 미래'인 것처럼 아산 정주영의 현대가 과거에 보여줬던 길이 미래의 생존전략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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