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에서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며 침울한 표정이다. 공공기관장 공모 참여를 포기하려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29일 서울경제신문이 17개 정부부처 중 10개 주요 부처의 산하 공공기관들을 파악해보니 현재 기관장이 공석인 곳은 3개(강원랜드·규제개혁위원회·인천공항공사)였다. 10개 부처는 총리실·기획재정부·국토교통부·안전행정부·산업통상자원부·외교부·농림축산식품부·환경부·여성가족부·해양수산부 등이다. 아울러 이들 부처 산하에서 연내에 추가로 기관장 임기가 만료되는 곳은 공무원연금공단·KOTRA 등 11개에 달했다. 이와 별도로 지난달부터 현재까지 상임이사·감사 등 신규 임원공모를 개시한 공공기관도 4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기관 중 대다수에서 전ㆍ현직 관료 출신들이 후임 임원 후보군으로 자천타천으로 거론돼왔다. 그러나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관료들의 낙하산 인사 문제가 새삼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된데다 박 대통령의 철밥통 추방 발언까지 더해지면서 민간 중심으로 인선구도가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장 현재 신임 기관장 선임이 진행 중인 공공기관들이 구도 변화의 영향권에 들게 됐다. 기관장 공모가 진행 중인 주요 공공기관들을 보면 코스콤·도로교통공단·국립암센터 등 10여곳에 이른다.
이중 코스콤 사장직의 경우 당초 기획재정부 출신인 우기종 전 통계청장과 김철균 전 청와대 뉴미디어비서관 등이 후보군으로 하마평에 올랐으나 정작 당사자들은 지원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코스콤 사장후보추천위원회는 총 13명의 사장 지원자 중 민간 정보기술(IT) 전문가 2명과 전직 자사 출신자 1명을 포함해 3명으로 인선폭을 압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관료 출신 산하기관장은 물론 현역 고위공직자들도 동요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주요 부처들의 간부급 인사적체로 조만간 옷을 벗어야 할 기로에 선 고위간부들은 산하 기관장·감사·상임이사 등을 퇴로로 고려해왔지만 이번 박 대통령의 발언 이후 기대를 접는 분위기다. 이렇게 될 바에야 무보직으로 수모를 당하더라도 공직자로서 어떻게 해서든 연명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반응도 나온다.
산업부의 한 간부는 "세월호 침몰 이후 공무원들이 업계나 공공기관의 요직을 맡아 당국의 감독·관리를 무마하는 로비스트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높은 상황에서 어떤 관료가 눈치 없이 공공기관장 자리에 도전하겠느냐"며 숨죽인 공직사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이 같은 관가·공공기관들의 낙하산 배제, 철밥통 파괴 바람이 얼마나 철저히 지켜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현실적으로 민간 출신으로 협회장을 비롯한 산하기관장과 임원할 만한 적임자를 찾기도 무리가 있다. 300여개에 달하는 공공기관 중 비교적 규모가 큰 30개의 공기업과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87개 준정부기관은 그나마 통제가 가능하겠지만 나머지 대다수의 공공기관들은 규모가 작고 숫자가 워낙 많아 일일이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