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경제로 본 일본과의 관계] 반도체서 자동차까지 일본 소재 끊기면 생산라인 멈출 판

■ 제조부문<br>2차전지 소재 50~90% 점유… LCD 반사방지필름은 99%까지<br>전자제어장치 등 자동차 부품도 일본제휴 생산으로 의존도 커<br>중소기업 뛰어난 원천기술 일정 비율 사용 의무화하고 국책硏과 인력·기술교류 시급

국내 한 반도체 업체 근로자들이 생산라인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체들은 감광재와 증착용 가스, 웨이퍼 등 핵심소재들을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서울경제DB


반도체를 생산할 때는 재료인 웨이퍼 위에 얼마나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지가 관건이다. 이때 필요한 회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녹여 제거하기 위해 감광재(포토레지스터)라는 화학물질이 사용된다.

전세계 메모리반도체 1ㆍ2위 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반도체 공정의 필수소재인 이 감광재만큼은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해 사용한다. 만에 하나 일본산 감광재 수입이 중단되면 국내 반도체 업계의 생산라인이 멈춰서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본 소재업체들과 오랜 기간 협력관계를 유지해왔고 구매처도 다변화해 소재 공급이 일시에 중단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다만 일본 업체들의 소재기술력이 워낙 뛰어나 일본산 소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반도체 강국인 우리나라도 적지 않은 핵심소재는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20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감광재 외에도 반도체의 재료가 되는 실리콘 웨이퍼와 웨이퍼에 얇은 막을 씌우는 데 사용되는 증착용 가스 등도 일본산 의존도가 높은 소재들로 꼽힌다. 실제로 포스코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반도체 소재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감광재가 99%, 반도체 봉지재 91%, 반도체용 차단재 78%, 실리콘 웨이퍼가 69%에 이른다.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의 선두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도 일부 핵심소재는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대표적인 소재가 디스플레이 기판의 유리 위에 붙여 빛의 방향성을 조정하는 편광필름이다. 최근 국내 기업들도 편광필름 생산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일본산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이 밖에 반사방지필름ㆍ이방성도전막(ACF)ㆍ액정편광판 등도 일본 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이 높은 디스플레이 소재들이다.

디스플레이 업계의 한 관계자는 "LCD 자체가 일본에서 개발해 국내에 들어온 기술이고 일본 업체들이 관련 특허도 많이 보유하고 있어 디스플레이 소재 분야에서 일본 업체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삼성SDI와 LG화학이 세계시장을 이끌고 있는 이차전지 분야도 일본산 소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일본 업체들은 리튬이온 이차전지의 4대 소재로 불리는 양극재ㆍ음극재ㆍ전해질ㆍ분리막에서 각각 50~90%대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차전지 업계 관계자는 "사업 초기에는 일본산 소재 의존도가 매우 높았지만 최근 들어 소재 국산화기 진전되고 있고 중국으로의 소싱도 늘어나 일본 의존도는 점차 낮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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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소재 분야에서도 일본 업체들의 경쟁력을 무시할 수 없다.

현대ㆍ기아자동차의 부품 국산화율은 98%까지 올라왔지만 여전히 일본 부품 업계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국내 부품업체의 상당수가 일본 부품사와의 합작사이고 일본 업체와의 기술 제휴를 통해 제품을 생산하는 국내 업체도 많기 때문이다. 이런 회사에서 만든 제품은 표면적으로는 국산이지만 핵심기술은 여전히 일본에 기대고 있는 셈이다.

특히 전자제어장치(ECU) 등 핵심 전장부품은 독일 보쉬와 컨티넨탈, 미국 델파이와 함께 일본 덴소가 전세계를 과점하고 있고 엔진에 들어가는 각종 밸브류 등 기계 부품과 커넥터 등 차체 전자부품도 일본산 또는 일본 기술을 통한 제품이 독점적인 시장우위를 나타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에 들어가는 각종 소형 모터들도 일본산이 압도적으로 신뢰도가 높다.

완성차 업계는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보고 있다. 하이브리드차 등 미래형 자동차 부품은 일본이 크게 앞서 있기 때문이다. 특허 장벽도 높아 자체개발이 어려운 부품들도 상당하다.

자동차의 경우 자국 내 부품산업이 제 역할을 못한다면 그야말로 조립업종에 불과하다. 때문에 한국도 앞으로 자동차 강국의 진정한 면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품이 완성차의 발전 수준을 따라가야만 한다.

자동차 부품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동차에 들어가는 기계와 전자부품, 기초소재 분야는 독일과 일본이 최강"이라면서 "부품산업 발전을 토대로 완성차 산업이 발전한 두 나라의 사례를 반드시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같은 일본 소재 의존현상 속에 관련 무역수지도 악화되는 추세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대일본 소재ㆍ부품 무역수지 적자는 2007년 188억달러에서 지난해 221억달러로 늘어났다.

중소업계에서는 한국이 부품ㆍ소재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대기업과 정부기관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와 관련, 전자부품 소재를 개발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뛰어난 원천기술을 개발해도 대기업이나 정부가 외면하고 대기업에서는 연구인력을 빼가거나 유사한 기술을 내놓기 일쑤인 한국에서 부품ㆍ소재 강국의 길은 요원하다"며 "중소기업이 개발한 부품ㆍ소재를 일정 비율 이상 쓰도록 하는 쿼터제를 도입하고 중소기업들이 원천기술 개발에 매진할 수 있도록 국책 연구기관과 인력ㆍ기술 교류를 원활히 하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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