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까지 관련 당사자가 모두 합의하는 노조법 개정안 처리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으로 그동안의 노조법 개정 논의에 계속 참여해온 한 노동계 인사는 "다자 협의체 논의를 제안한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력을 발휘할지, 아니면 괜한 정치쇼를 벌이다가 파국을 맞게 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고 걱정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합의 처리와 파국 양쪽의 가능성을 다 열어놓았지만 방점은 후자에 찍었다. 지난 13년 동안 해온 작업을 백지화하고 정확히 10일 안에 모두가 만족할 묘안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22일부터 노조법 개정을 위한 다자 협의체가 운영될 예정이지만 여기에서 합의안이 도출될 것이라는 믿음은 찾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원점에서의 재논의는 가능하지 않은 만큼 4일의 노사정 합의를 원칙으로 세부사항을 결론 짓는 미세조정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원점서 재논의는 안 돼=4일의 합의는 노조법의 직접 당사자인 한국노총ㆍ경총과 법의 시행주체인 노동부 3자가 일궈냈다. 경제5단체장들은 이날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를 만나 노사정 합의 대로 노조법이 처리돼야 한다고 건의해 4일 합의를 받아들이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4일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유일한 단체는 민주노총뿐이다. 오직 한 이해당사자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머지 이해당사자가 동의하는 안을 무시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경총의 한 관계자는 "4일 합의 탓에 회원들 간 불협화음이 생기는 등 어려움이 컸지만 약속한 이상 지키는 게 맞다"며 "환노위의 다자 협의체 구상안은 결국 민노총 뜻에 나머지 모든 단체가 맞춰야 한다는 것으로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 관계자는 "민노총이 주장할 바가 있으면 별도로 환노위에 의견을 제출하면 되고 환노위는 이를 참조해 결단을 내리면 될 것"이라며 "나머지 이해당사자는 이미 입장을 정리한 만큼 더 이상의 협의는 필요 없다"고 덧붙였다. ◇변질된 한나라당 안 거둬들여야=주목해야 될 부분은 이날 경제5단체장들이 국회 처리를 건의한 것이 4일의 노사정 합의이지 이후 나온 한나라당 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나라당은 당초 노사정 합의를 바탕으로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정작 나온 내용은 많이 달랐다. 특히 통상적인 노조관리업무에 대해 타임오프를 적용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은 한노총과의 정책연대를 유지하기 위해 슬며시 끼워넣은 것으로 경영계의 큰 반발을 불러왔다. 이에 대해서는 이두아 의원 등 한나라당 내에서도 반대를 하는 목소리가 있어 원안을 유지하기는 어려워보인다. 한노총은 여기에 더해 '통상적인 노조관리업무'를 '통상적인 노조업무'로 범위를 더 넓히고 '근로자 대표' 문구를 넣어 사실상 전임자 활동을 보장 받겠다는 요구안을 내놓고 있다. 이 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질 경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라는 당초 노사정 합의의 취지는 사라진다.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은 "노사정이 어렵게 합의했는데 이후 생각지도 못한 변화가 있어 놀랐다"며 "(한나라당 안은) 노사정 합의 정신을 훼손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지금은 미세조정으로 마무리할 때=6월 국회는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놓고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해 현행법이 그대로 시행된 바 있다. 우려했던 대량 실직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1,188억원에 이르는 정규직 전환 지원금은 개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서 사라졌다. 노조법이 연내 개정되지 못하고 내년부터 현행법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현장의 혼란은 비정규직법 때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비한 준비가 노사정 모두 없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노사정 합의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마지막 손질을 하는 정도다. 한 예로 논리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정해졌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복수노조의 유예기간 조정을 들 수 있다. 최영기 노사관계 학회장은 "노사정 합의를 통해 일정한 기준선은 이미 마련돼 있다"며 "합의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주체의 의견을 수렴해 세부수정을 하는 선에서 연내 처리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