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27일] 어빙 피셔


[오늘의 경제소사/2월27일] 어빙 피셔 권홍우 편집위원 ‘언제까지 갈까.’ 주가가 뛰는 만큼 불안심리도 커졌다. 1929년 미국의 상황이다. 경계론이 나왔지만 그때마다 묵살됐다. ‘미국 최고의 경제학자’ 어빙 피셔(Irving Fisher)의 ‘주가가 영원히 하락하지 않는 고원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진단 때문이다. 주가 대폭락 한복판에서도 피셔는 ‘시장이 정신착란증을 보이고 있을 뿐’이라며 코웃음쳤다. 호언장담과 달리 급락한 주가는 세계 대공황까지 낳았다. 피셔도 모든 재산을 잃었다. 그의 손실액은 1,000만달러로 추산된다. 개인적으로 운영하던 금융기기회사 ‘인덱스 비지블(컴퓨터 회사 유니시스의 전신)’도 파산했다. 예일대학에서 피셔의 집을 사들여 다시 빌려주지 않았다면 주택마저 잃을 뻔했다. 주가 예측을 잘못한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피셔는 현대경제학의 개척자. ‘화폐수량설’을 비롯해 이자와 자본에 관한 이론의 대부분이 그에게서 나왔다. 1867년 2월27일 태어난 피셔는 경제학을 가장 쉽게 설명하는 교수로도 이름을 날렸다. 경제분석에 수학을 도입해 계량경제학의 선구자로도 꼽힌다. 국민경제의 움직임을 유량(flow)과 저량(stock) 개념으로 나누고 국민소득론을 발전시킨 학자로도 유명하다. 1947년 80세를 일기로 사망한 그의 이론은 밀턴 프리드먼을 위시한 통화론자와 신자유주의에 녹아져 내려온다. 애덤 스미스와 마르크스가 포함된 세계 10대 경제학자의 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학자임에도 그의 이름은 생소하다. 미래 주가를 잘못 읽었던 탓이다. 예일대 최초의 경제학박사. 수학과 경제학을 접목시킨 최초의 미국인이라는 명성도 내려오지 않는다. 아까운 사람이지만 오늘날에도 반쪽짜리 피셔가 쌔고 쌨다. ‘상승’만을 외치는 교수며 전문가가 어디 하나둘이랴. 입력시간 : 2007/02/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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