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6월26일] 란트슈타이너

[오늘의 경제소사/6월26일] 란트슈타이너 권홍우 수술환자의 반은 죽어나갔다. 아무리 집도가 잘돼도 수혈이라는 과정이 남았으니까. 혈액의 구분이 없었던 20세기 초반까지 그랬다. ‘로또’였던 수술의 성공확률을 획기적으로 높여준 사람은 카알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 ABO식 혈액형을 발견, 인간을 피의 공포로부터 구해냈다. 1868년 신문기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의학과 화학을 공부한 후 빈 의과대학의 조교로 일하면서 혈액 연구에 매달렸다. 혈액 연구에는 주변의 반대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가장 고약한 분야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수혈 첫 기록은 1667년. 소량의 양의 피를 받은 프랑스 환자가 살아났지만 이후의 수술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수혈은 19세기 말까지 ‘금기 사항’이었다. 란트슈타이너가 찾아낸 것은 수혈시 응고의 이유. 연구를 시작한 지 4년 만인 1901년 세가지 형질의 혈액형을 찾아내 AㆍBㆍC형으로 이름 붙였다. 다른 혈액형을 만나도 굳어지는 현상이 안 나타나는 C형은 응고반응이 0(제로)라는 뜻에서 나중에 O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1년 뒤에는 AB형까지 밝혀내고 수혈시 피가 굳는 현상은 질병 때문이 아니라 정상적인 화학반응이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ABO식 혈액형 발견 공로로 1930년 노벨의학상을 받은 그는 은퇴 후 1943년 6월26일 심장마비로 사망(75세)할 때까지 연구를 계속, 1940년에는 Rh형 혈액형 분류를 규명해냈다. 오늘날 혈액형 기준은 500여종에 이르지만 주류는 여전히 ABO식이다. 피의 비밀을 들여다본 지 백여년. 혈액 연구는 피처럼 뜨겁다. ‘이브’의 혈액형 추적에서 성질에 대한 논의까지. ‘B형 남자는 바람둥이’라는 속설도 이런 범주다. 인간의 궁금증은 끝이 없다. 입력시간 : 2006/06/2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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