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의 조문 파동으로 1년 동안 중단됐던 남북 대화가 재개됐다.
이번 회담은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 수준을 넘어 남북 경제협력에서도 많은 합의를 이끌어냈다. 주목되는 것은 중개인을 통한 단순교역이나 일방적 지원에서 벗어나 남북이 가진 자원과 자본ㆍ기술을 결합시켜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새로운 방식의 경제협력’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북한의 지하자원 공동개발과 경제시찰단 상호 교환, 개성공단 본단지 조성, 대규모 전력 지원, 개성 및 백두산 관광 등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고 이를 지원할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가 개설되고 있다. KT와 북한 체신성 사이에는 이산가족 화상 상봉을 위한 광케이블과 이를 위한 민간용 직통전화가 분단 60년 만에 개통되기도 했다.
새로운 방식의 경제협력은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 산하의 과학기술실무협의회 구성 합의로 이어지고 있다. 남북한 과학기술협력은 90년대 초반에 태동돼 학술대회와 공동연구, 자료 교환 등의 다양한 형태로 추진돼왔으나 상당수가 공식 창구 없이 추진돼 심도가 깊지 못했고 전략적 의미도 적었다. 이번 과학기술실무협의회 구성 합의가 큰 의미를 가지는 것도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에서의 협력을 추진할 가능성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 5년간 10여차례 북한의 과학자들과 만나면서 좀더 포괄적이고 안정적이며 파급 효과도 큰 과학기술협력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이를 정부가 받아들여 지난해 남북한 과학기술협력기본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그 기본 방향은 남북의 수요가 일치하고 여타 분야로의 파급 효과도 큰 협력을 추진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지원할 협력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주요 내용은 공식 협력창구 개설과 분야별 연계 강화, 인력 교류 및 공동연구 활성화, 과학기술협력센터 설립 등이다.
최근 북한에서도 이에 부합하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고 있다. 과학원을 중심으로 대남 협력을 전담할 민족과학기술협회가 설립되면서 전문 인력이 보강되고 각종 과학기술지표도 국제 규범에 맞게 재정비하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과 북한 과학원이 2년 전부터 추진해오던 과학기술협력센터 설립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경제협력과 유사하게 포괄적인 남북과학기술협력 추진에 필요한 창구와 인프라가 정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협력창구 개설에 발맞춰 남북 과학기술협력계획의 공동수립 및 이를 위한 과학기술지표, 성과평가, 표준, 정보, 인력 등에서의 분야별 교류 확대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원료ㆍ에너지ㆍ경공업 등 경제협력에 극히 중요한 몇개 분야에서는 산ㆍ학ㆍ연이 연계된 대규모 공동연구단을 설립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의 석탄화학을 대체하고 남북 상호연계를 강화할 석유화학 관련 연구가 그 예다.
이를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평양과 서울ㆍ개성 등에 과학기술협력센터를 설립할 필요가 있다. 협력센터에는 회의실과 도서실ㆍ숙소ㆍ사무실ㆍ강의실ㆍ실험실 등의 기본적인 협력 인프라를 갖추고 관계자들이 상주하면서 여타 분야의 협력을 지원한다. 이와 함께 현재 6억5,000만원에 불과한 정부의 남북 과학기술협력 예산을 체계적으로 확충하고 예산 사용의 효율성 및 투명성 제고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바세나르협정 등 국제 규범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국민적 공감대 속에서 협력을 강화할 방안도 찾아내야 할 것이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61년 당시 북한 과학원장이었던 백남운은 ‘과학원 통보’ 기고를 통해 남북 과학기술 교류와 통일적인 발전을 민족적 과업으로 내세운 바 있다. 주요 내용은 서울과 평양의 공동연구소 설립과 공동연구, 인력양성, 각 부문별 연계, 대표단 교환, 학술대회 개최, 연구원 교환 등이다.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고 모두 현재 논의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민족의 힘과 지혜를 모아 이를 실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