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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새롭게 맡은 현장은 무엇보다 어렵기 마련이지만 한편으로는 새롭게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그렇게 배우는 것을 즐기면서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현장소장이라는 자리까지 오게 됐네요."
국내 10대 대형 건설사에는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여성 현장소장이다. 건설업 자체가 여성에게 벽이 높은데다 거친 근로자들을 다뤄야 하는 곳이다 보니 현장소장의 경우 그동안 금녀의 벽으로 여겨져왔다.
최근 이 벽이 허물어졌다. 현대산업개발의 서울 논현동 '렉스타워' 현장소장이 된 박정화(43ㆍ사진) 부장이 주인공이다. 이 회사 창사 이래 첫 여성 현장소장이자 10대 대형 건설사를 통틀어서도 1호다.
현장소장은 건설업계에서 '야전사령관'으로 불린다. 작게는 수백억원에서 크게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공사현장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탓이다. 해당 현장에 관한 한 거의 모든 것이 현장소장 선에서 결정이 이뤄지고 실행되는 것이 업계의 관례다.
박 부장은 앞으로 16개월, 18층 높이로 들어서는 연면적 7,415㎡ 규모의 '렉스타워' 신축 공사현장을 총괄 지휘하는 역할을 맡는다.
박 부장은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하고 1994년 현대그룹 공채를 통해 현대산업개발에 입사했다. "처음 입사를 했을 때만 해도 현장은 물론 회사 자체에 여성이 드물었어요. 처음 일산신도시 아파트 현장에 발령을 받아 가니까 옆에 있는 현장에서 구경을 오기도 했죠." 그는 "여자 동기나 선후배가 없어서 남몰래 힘들어 했던 적도 많았다"고 말했다.
일용직 노동자들과 드잡이까지 해야 할 만큼 억센 건설 현장이지만 그는 오히려 여성이라는 점이 그런 환경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자라 오히려 다들 잘해줬다"며 "음료수도 나눠 마시면서 친해지고 그러면서 서로 쉽게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입사 이후 첫 발령지인 일산 아파트 현장을 시작으로 그렇게 그가 거쳐간 현장만 5곳. 쉽지 않았을 법한 그 길을 버티며 오늘의 자리에 이른 것은 모든 현장을 배운다는 자세로 임하는 그의 태도 때문이다. 그는 "성격이 다른 현장에 새로 가게 되면 모든 것을 다 배워야 한다"며 "그렇게 새로운 것을 배울 때가 즐겁고 그 일을 잘 해냈을 때 보람을 많이 느낀다"고 말했다.
물론 여성 1호 현장소장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박 부장은 "여성 첫 현장소장으로 임명돼 책임감이 무겁다"며 "발주처가 만족할 수 있도록 원활히 소통하며 성공적으로 공사를 진행하고 싶다"고 밝혔다.
현대산업개발의 특유의 기업문화도 한몫했다. 현대산업개발 측은 "이번 인사는 능력만 있으면 성별에 상관없이 인재를 중용한다는 회사 방침에 따른 것"이라며 "앞으로도 능력 있는 여성인재를 적극 발굴해 육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