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차명계좌금지 논쟁의 진실


부모가 교육비 마련을 목적으로 개설한 자녀 명의의 통장부터 마을 계, 개인 간 채권ㆍ채무 관계 등 다양한 거래에서 우리네는 흔하게 차명계좌를 이용한다. 공동의 돈이거나 남의 돈인데 관행과 편의상 특정인 명의로 해놓는 것이다. 이른바 선의의 차명계좌다.

하지만 이 같은 차명을 악용하는 경우도 셀 수 없이 수두룩하다. 탈세, 비자금 조성, 주가조작, 횡령 등에 동원되는 차명계좌다. 유형도 다양하다. 소득세를 회피하기 위해 임직원 명의로 자금을 분산해놓은 병원장 등 고소득 자영업자, 전두환 전 대통령처럼 불법으로 획득한 재산을 은닉하기 위한 차명계좌, CJ 사건처럼 비자금 조성을 위해 개설한 임직원 명의 수백개 계좌 등등.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통해 드러난 불법 차명재산만 5조원에 이른다.


금융실명제 시행 20년을 맞아 온갖 불법의 온상이 되고 있는 차명계좌를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정치권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현재의 금융실명제는 차명계좌를 허용하고 있다. 이에 선의의 차명계좌는 예외로 하고 악의의 차명계좌를 원천 금지함으로써 불법 행위를 뿌리부터 뽑자는 것이다.

이에 금융위원회 등 정부는 반대하고 있다. 선의와 악의의 차명계좌를 구분할 수 없으니 이대로 가자는 것이다. 문제는 많지만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으니 그대로 불법 행위를 덮고 가자는 얘기와 다름없다. 여기다 차명을 금지하면 불법 차명재산들이 사금고 등으로 들어가 지하경제가 더욱 활성화해 경제가 위축된다는 반대 논리도 곁들인다. 정말 그럴까.


20년 전 금융실명제 실시 때도 반대파들이 경제위축 등 부작용 우려를 들고나왔지만 기우에 그쳤다. 떳떳하게 선의의 차명을 활용하는 수많은 국민들이 악의의 차명계좌를 금지하자는 주장에 얼마나 반대를 할까. 차명거래는 지하경제, 나아가 탈세와 필연적으로 연관돼 있다. 박근혜 정부가 손쉬운 증세에 앞서 조세 정의와 형평성을 세우기 위해 반드시 해결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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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중산층 증세를 골자로 하는 세제개편안을 내놓았다가 엄청난 국민의 조세 저항에 직면해 있다.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세 등은 외면하고 증세가 쉬운 월급쟁이 중산층의 유리지갑만 털고 있다는 국민 정서가 깔려있는 것이다. 정부가 기술적 난제 등을 운운하며 또다시 차명 문제를 미봉하려 했다가는 또 다른 국민적 불신에 직면할 것이다.

이병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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