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진퇴양난의 한ㆍEU FTA

“알고 보니 호랑이 꼬리를 잡았다.” 벨기에 브뤼셀 현지에서 한ㆍ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제5차 협상을 지켜본 한 기자의 관전평이다. 지난 5월 협상 시작 때만 하더라도 우리측은 자신감이 넘쳤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과 불과 8차례의 본협상만으로 협상 타결이라는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지 않았던가. 특히 한ㆍ미 FTA 타결로 구축된 대외 개방의 기본 가이드라인은 한ㆍEU FTA를 무리 없이 ‘연내타결’로 안내할 우리측의 든든한 협상카드였다. 하지만 비관세 장벽 분야 중 ‘자동차 기술표준’ 문제라는 뜻하지 않는 암초가 돌출되면서 협상 테이블은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사실 안전벨트ㆍ전조등 등 자동차 부품ㆍ안전 등을 규정하는 기술표준 문제는 EU측은 물론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그럼에도 양자 간에는 현격한 차이가 존재했다. EU는 아시아 국가 중 한국과의 첫 FTA를 통해 유럽경제위원회(ECE)의 자동차 기술표준를 아시아 전역에 전파하겠다는 거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EU집행위원회가 EU 자동차 업계와 공동으로 2005년부터 ‘21세기 경쟁력 있는 유럽 자동차 규제시스템(CAR21)’ 기구를 가동 중이라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EU가 한국에 요구하는 유럽식 기술표준의 ‘전초기지’ 역할론은 이렇듯 막무가내가 아니라 치밀한 ‘정책논리’로 무장돼 있다. 결과적으로 든든한 자산으로 여겨졌던 한ㆍ미 FTA는 오히려 ‘부채’가 됐다. 한ㆍ미 이상으로 EU에 양보안을 내다가는 향후 한ㆍ미 FTA 비준마저 어렵게 할 수 있다. 순한 양 같던 EU협상단도 알고보니 까다로운 ‘샌님’이다. 우리측의 사소한 ‘미세조정’ 요구도 이들에게는 27개 EU회원국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거대조정’으로 곧잘 확대됐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결단으로 난제가 풀리는 한ㆍ미 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당초 100m 단거리 질주를 기대했던 우리측 협상단은 이제 장기 마라톤에 대비해 새로 전략을 짜야 할 형편이다. 브뤼셀 5차협상에서 ‘한ㆍ미 FTA 수준의 양보’라는 (이제는 먹히지도 않는) 단 한 장의 협상카드만 쥐고 있던 우리측 협상단을 지켜보며 기자가 느낀 무기력감이 향후 6차협상장에서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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