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불편하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 무대에 올라 관객과 음악으로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국내 정상급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수원시립교향악단(상임지휘자 김대진)의 무대는 다른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보다 더 시선을 끈다. 휠체어에 앉아 제2바이올린 파트 맨 뒷줄에 자리하고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이강일(53)씨 때문이다.
생후 1년도 안 돼 소아마비를 앓고 평생 한 발짝도 떼어보지 못한 이씨는 국내 오케스트라 단원 가운데 휠체어에 올라 무대에 서는 유일한 연주자다.
미국 신시내티 음대와 뉴욕시립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그는 1990년 수원시향에 입단, 20년 가까이 수원시향이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데 일조하고 있다.
연주자의 길을 걷기 조금 늦은 나이라고 여겨지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바이올린을 접한 이씨는 다니던 특수학교에 자원 봉사를 온 주부 바이올리니스트 강민재씨에게 악기를 배우며 연주자의 꿈을 키웠다.
“강 선생님을 통해 바이올린을 배우자 새로운 세상을 열렸다. 운명적인 만남이었다”는 그는 “장애인이란 이유로 정규학교에서 받아주지도 않았고 마땅히 놀거리도 없었으니 자연스레 바이올린이 전부가 됐다”고 말한다.
특수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1976년 ‘베데스다 현악 4중주단’을 창단해 연주활동을 하던 그는 유학에서 돌아온 후, 지난 2005년 까지도 옛 동료들과 베데스다 4중주단 활동을 재개해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연주했었다. 그는 “멤버 한 명이 음악을 쉬고 있고, 한 명은 미국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라 뭉치기 어렵지만 기회가 되면 희망의 4중주단 활동도 계속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아산재단의 후원과 미국 신시내티 대학의 장학금을 받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 이씨는 피나는 노력 끝에 바이올리니스트가 돼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오케스트라 입단이 쉽지 않았다.
이씨는 “수원시향 입단 시험을 볼 때 면접관이 ‘연습실까지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도 없고 계단도 많은데 어떻게 다니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무조건 알아서 하겠다고 다짐 겸 약속하고 나서야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고 수원시향 입단 면접 당시를 회상했다.
다행히 동료들이 계단을 몇 개나 거쳐야 하는 연습실까지 그를 들어 나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최근에는 수원시향의 배려로 연습실이 수원 야외음악당 2층으로 옮겨 불편 없이 연주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초창기에는 자기만족 때문에 음악을 했지만 장애인이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희망을 주는지를 알게 된 후에는 큰 보람과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