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9월22일] <1507> 이라크 전쟁


1980년 9월22일, 여명. 이라크 전투기가 이란의 10개 공군기지를 포함한 12개 군사목표에 폭탄을 퍼붓고 이라크 지상군이 국경을 넘었다. 구약 시대부터 앙숙이던 두 나라(민족)의 전면전에 대한 대체적인 전망은 이라크의 압승. 이슬람혁명으로 군 지휘부가 쫓겨나고 미국의 경제봉쇄로 장비의 부품공급이 끊긴 이란이 바로 점령 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무너졌던 이란 정규군이 되살아나고 이슬람 신앙에 불타던 국민들이 앞다퉈 혁명수비대에 자원한 덕분이다. 전략요충지인 주요 하천과 유전지대를 장악하고 회교혁명을 차단해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겠다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야심은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이란이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고 1차대전 당시와 같은 참호전을 거쳐 휴전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만 8년. 두 나라는 1조달러의 경제적 손실과 150만명의 인명 피해를 낸 채 아무런 성과도 없는 전쟁을 끝냈다. 덕을 본 나라도 있다. 초기에는 암묵적으로 1982년부터는 노골적으로 이라크를 지지한 미국이다. 이라크의 독가스 살포를 외면하고 심지어 이라크가 발사한 미사일로 미 해군의 4,100톤급 프리킷함 스타크호가 피격돼 사상자 48명이 발생하는 사고조차 '실수'라고 덮은 덕인지 미국은 회교혁명 전파와 패권국가 등장을 막았다. 유가도 다른 산유국의 증산에 힘입어 10년간 오르지 않아 달러화 약세에 시달리던 미국 경제의 짐을 덜어줬다. 전쟁으로 빚더미에 앉은 이라크는 경제적 난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방인 미국이 이번에도 묵인할 것'이라는 오산 아래 '쿠웨이트 침공'을 강행해 파멸의 길을 걸었다. 호메이니도, 후세인도 사라졌지만 이란과 이라크의 오늘은 여전히 어렵다. 외세가 개입한 명분 없는 전쟁의 후유증은 끝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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