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속에서도 정부 각 부처의 '일단 따놓고 보자'는 식의 예산 요구 행태는 올해에도 되풀이됐다. 여기에 표와 직결된 복지 분야의 예산 요구는 늘어난 반면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는 사회간접자본(SOC)∙산업 분야의 예산 요구는 오히려 줄어 정부 예산마저 '대선 맞춤형'으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비등하고 있다.
2일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2013년도 예산 요구현황' 자료에 따르면 각 부처가 지난달 말까지 제출한 예산·기금의 총지출 요구 규모는 346조6,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6.5%(21조2,000억원) 늘었다. 이 같은 요구 증가율은 최근 5년간 평균 요구 증가율(7.0%)보다 낮은 수준이나 총지출 요구 규모는 당초 정부의 목표치를 크게 웃돌았다. 정부는 내년도 균형재정 회복을 목표로 지난해 발표한 국가재정운영계획(2011~2015년)에서 2013년 예산 총지출 규모로 341조9,000억원을 예상했다.
물론 정부안을 국회에 최종 제출해야 하는 10월 초까지 불필요한 예산을 가지치기할 시간은 남아 있지만 각 부처의 요구안만 놓고 보면 이미 정부 예상치를 4조7,000억원이나 훌쩍 뛰어넘었다. 기획재정부는 내년도 균형재정 회복을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지만 막상 다른 부처들은 예산편성 시기 때마다 재연되는 '일단 많이 따내고 보자'는 식의 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재정부 예산실의 한 관계자도 "지난 2005년 총액배분자율편성(Top-down)제도 도입 이후 많이 나아지긴 했으나 필요 이상의 예산을 요구하는 각 부처의 행태는 아직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분야별 요구현황을 보면 보건·복지·노동 분야가 내년도 예산으로 4조9,000억원(5.3%) 증액을 요구해 증가폭이 가장 컸다. 이어 교육이 4조6,000억원(10.1%), 일반공공행정 3조5,000억원(6.3%), 국방 2조5,000억원(7.6%) 등의 순이었다.
SOC와 산업 등의 분야는 오히려 지난해보다 예산요구액이 줄었다. SOC는 고속철도(1조원), 세종시 건설(2,000억원) 등 주요 국책사업은 증액됐지만 도로 부문 투자 내실화(-8,000억원) 등으로 총규모는 전년보다 2조3,000억원(10.1%) 줄었다. 산업·중소기업·에너지 등의 분야도 신흥시장개척, 소상공인 경쟁력 제고, 에너지 수급 등은 증액됐으나 석유공사 출자 감소 등으로 총 규모는 8,000억원(5.4%) 감액했다. 일각에서는 각 부처들이 대선을 의식해 표와 직결되는 복지 분야의 지출을 알아서 늘린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재정부는 각 부처 요구안을 토대로 9월 말까지 정부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석준 재정부 예산실장은 "내년도 예산편성의 중점 검토 방향은 균형재정 회복과 함께 경기회복 흐름을 뒷받침하는 것"이라면서 "경제활성화와 민생안정 등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선제적으로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