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형적 돈흐름' 기업소외 심화

■ 가계대출 급증금융→가계→소비구도 지속… 2년새 倍늘어 지난해 12월부터 돈은 증시로, 부동산으로, 예금상품으로 동시 다발적으로 몰려 들었다. 어느 한 쪽에 돈이 흘러 들어오면 다른 쪽에서는 돈이 빠져 나가야 정상인데, 특성이 상반된 투자수단에 모두 돈이 몰리는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이 새해들어 오히려 더 심해지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 같은 기형적인 돈 흐름이 '금융 자금의 가계 편중'에서 기인한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금융회사들은 개인들에게 64조원이 넘는 대출을 추가로 해줬다. 개인들은 낮은 금융비용으로 쉽게 돈을 빌릴 수 있었고, 이렇게 쉽게 빌린 돈은 소비로 이어지거나 주식ㆍ부동산시장에 유입됐다. 또 투자 대기 자금으로 금융상품에 환류돼 대출재원으로 다시 활용되기도 했다. 즉 '금융회사-가계(개인)-소비ㆍ투자-가계(개인)-금융회사'로 이어지는 순환구도가 현재 우리나라 경제를 설명하는 중요한 돈 흐름 패턴인 셈이다. 지난해 극도의 경기 침체국면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가계에 집중된 자금이 내수(內需)를 촉발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설득력 있다. 그러나 돈 흐름은 여전히 제조업으로 물꼬를 돌리지 못하고 있다. 실물 경제의 주체인 '기업'이 소외된 상태로 '금융-가계-소비(투자)'를 맴도는 구도가 장기화된다면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이런 상태에서 금융회사들은 올해도 80조~90조원의 자금을 가계에 추가로 쏟아 부을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 가계 대출금 2년만에 2배로 지난 2000년말 105조원에 불과하던 은행권의 가계대출 잔액이 지난해 말 약 150조원으로 늘어났다. 생명보험사에서 가계대출은 한 해 동안 5조원 이상, 손보사는 1조원 가까이 순증했다. 보험업계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해말 현재 약 30조원. 카드사도 가계 빚 늘리기에 기여한 바 크다. 개인들의 현금서비스 이용액은 지난해 240조원(누적치ㆍ추정액)에 달하며, 이중 지난 연말 미상환액이 약 21조원(추정). 이는 2000년 말 현금서비스 미상환액 12조원에 비해 9조원이 늘어난 것이다. 이밖에 여신금융사의 대출전용카드, 신용금고의 소액대출 증가액 등을 감안하면 지난해 개인들이 짊어진 빚은 제도권 금융회사로부터만 64조원 이상 추가로 늘어난 셈이다. 올해 역시 은행ㆍ보험ㆍ신용카드ㆍ여신금융ㆍ신용금고 등 모든 금융기관들이 '사활을 걸고' 가계대출을 늘리려 한다. 그 계획치와 예상치를 종합해보면 늘어나는 가계대출금 잔액은 80조~90조원. 예상대로라면 가계 대출은 잔액기준으로 올해 말 300조원에 접근하게 된다. 2000년말에 비해 2배가 되는 셈이다. ◆ 내수 촉발ㆍ경기 회복 버팀목 현대차는 지난해 국내에서만 70만7,000대의 자동차를 팔았으며, 대표적인 식음료 업체인 롯데칠성은 지난해 무려 400%대의 주가상승률을 기록했다. 모두 내수가 단단한 버팀목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개인들은 지난해 사상 유례없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빚을 썼다. 워낙 금리가 낮아 부담이 없었을 뿐 아니라 금융회사의 문턱도 낮아져 접근이 쉬웠다. 이렇게 쉽고 싸게 빌린 돈을 경기 위축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비와 투자에 돌린 것이다. 차를 바꾸고 외식에 몰두한 탓에 자동차회사와 식료회사가 함께 호황을 누렸다. 최악의 경기 침체에서 어느정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저금리와 가계로의 금융자금 편중, 이로 인한 내수 촉발이 기대 이상으로 상승효과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 거품ㆍ부실화 등 후유증 우려 그러나 이 같은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시장흐름을 지켜보는 전문가들은 우려의 시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우선 가계로의 자금편중이 지나치다는 점이 걱정스럽다. 지난해 은행권의 기업대출은 2%가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가계대출 증가율은 40%가 넘었다. 우량기업에만 돈이 몰리고 있음을 감안하면, 은행들이 다수의 기업으로부터 대출을 회수해 개인들에게 돈을 돌리고 있다는 추정마저 가능하다. 이렇게 풀려나간 가계자금은 부동자금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보인다. 최근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 투기 조짐이 일고 증시에 고객예탁금이 급등락하며 요동을 치는 것도 풍성해진 가계부문의 유동성 때문이라는 분석. 넘쳐나는 가계자금이 시장에 거품을 만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금융회사들 역시 부동산가격 폭락등 예상치 못한 경제상황의 변화가 일어날 경우 쏟아낸 가계대출의 부실화를 감당하기 어려워져 미리 대비하지 않을 경우 자칫 또다른 형태의 '금융대란'을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성화용기자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