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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9월 9일] 美의 노동절 그리고 고용없는 성장

언론과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던 참여정부 초기 시절이다. 한 신문사가 당시 유행하던 신조어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을 빗대 '청년 절반이 백수'라는 제목을 1면 톱으로 올리자 당시 재정경제부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를 요청한 일이 있다. 실업률 통계상에 청년실업률이 50%에 육박하는 것을 두고 청년 절반이 논다는 식으로 보도한 것인데 백수의 정의를 실업자로 본다면 이 제목은 물론 틀렸다. 실업자는 취업 의사가 없는 학생과 군인ㆍ주부 등 비경제활동인구와 구직단념자가 제외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수라는 의미가 경제학 용어인 실업자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닐진대 이태백을 넘어 '사오정(45세가 정년)' '오륙도(56세 정년이면 도둑놈)'와 같은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로 불안한 고용 사정을 함축적으로 꼬집은 것을 두고 자구 해석에만 매달린 정부의 대응은 과한 감이 있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동산 빼고는 꿀릴 것'이 없다며 경제 치적을 자랑했지만 실업 문제는 부동산과 더불어 참여정부를 내내 괴롭힌 과제였다. 해마다 경제가 성장하는데도 괜찮은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는 이른바 '고용 없는 성장'이 경제정책의 화두에 오른 시기도 이즈음이다. 지난 7일 노동절을 맞은 금융위기의 진원지 뉴욕의 표정은 한가로워 보였다. 뉴욕 브루클린에서는 중남미 이민자들의 축제인 '캐리비언(Caribbean) 퍼레이드'가 화려하게 수를 놓았고 맨해튼 곳곳에서는 벼룩시장이 열려 관광객과 뉴요커의 발길을 붙잡았다. 메이데이(May Day)의 발상지인 미국에서 노동절이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의 기치를 올리는 정치적 행사에서 벗어나 여름을 끝내고 가을을 맞는 간절기 휴일로 정착한 지 오래지만 노동절을 맞은 미국의 속내는 결코 여유롭지만은 않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4명의 구직 단념자가 고용시장에서 겪은 참담한 경험을 다룬 소식을 3장의 사진과 함께 1면 지면 절반을 할애, 고용 없는 성장(Jobless Recovery)에 경종을 울렸다. 미국 경제는 2ㆍ4분기에 -1% 성장해 하반기 플러스 성장을 예고했으나 7월과 8월에도 일자리는 20만개 이상씩 줄었고 실업률 두자릿수 돌파는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사이에서는 미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났는지, 또 향후 회복의 강도를 놓고도 전망이 분분하지만 사실 이런 논란은 대다수의 미국인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일자리가 충분히 생기지 않으면 침체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일반적 정서다. 월가에서는 'W'자형 더블딥(Double-dip) 가능성을 20% 정도 예상하고 있지만 고용 없는 성장이라면 소비 의존도가 높은 미국에는 사실상 더블딥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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