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1년 11월. 한국 온라인 게임 '미르의 전설'이 중국 진출 반년 만에 50만명 동시 접속, 6,000만명 가입이라는 신화를 세웠다. 이 사건은 온라인 게임에 대한 중국인들의 인식을 바꿨다. 이후 중국 온라인 게임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조만간 1,000억 위안(약 17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 2012년 10월14일. 프랑스 e스포츠대회 '아이언 스퀴드2'의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 프로게이머 이승현 선수와 최민수 선수가 '스타크래프트2'최종 진출권을 놓고 대결했다. 경기장 열기는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이 선수가 11시58분경 "아 맞다. 셧다운제 하는데…"라는 말을 채팅창에 남기고 경기를 포기했다.
당시 15살이었던 이 선수가 셧다운제를 깜빡 잊고 대회에 참가했던 것이다. 생중계를 지켜보던 국내외 1만여 명의 게임 팬은 허탈했다. 영문을 몰랐던 외국 팬들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라며 게시판에 질문을 쏟아냈고, 국내 팬들은 "국제적 망신"이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 게임산업은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는 대표적 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리서치 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세계 게임시장 규모가 2017년 870억 달러(약 93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국 등 세계 각국은 달리는 호랑이 '게임산업'에 올라타기 위해 각종 지원책을 쏟아내는 중이다.
하지만 눈을 한국으로 돌리면 상황은 반전된다. 차세대 콘텐츠산업의 대표주자인 게임산업이 졸속 규제에 발목이 잡혀 신음하는 중이다. 쑥쑥 커가는 글로벌 시장을 소 닭 보듯 지켜만 봐야 하는 참담한 상황이다.
정부와 국회의 게임산업 규제가 도를 넘었다. '규제'를 넘어 '탄압'수준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결정타는 정치권에서 날렸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게임을 마약, 술, 도박과 함께 '4대악'으로 규정했다. "게임 중독으로 인한 폐해가 사회적으로 심각하기 때문에 대대적인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다. 같은 당 신의진 의원은 게임 중독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가중독관리위원회' 도입이 시급하다며 게임산업 규제에 포문을 열었다.
게임산업에 대한 발목잡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정부는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심야시간 게임 접속을 차단하는 셧다운제와 학부모가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게임시간선택제를 운영 중이다. 여기에 게임업체 매출의 1%를 게임중독치유기금으로 의무적으로 징수하는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고, 게임을 4대악으로 규정하는 국가중독관리위원회 도입을 추진 중이다.
10만명에 이르는 국내 게임산업 종사자들은 "그 동안 우리가 마약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이냐"며 큰 상실감에 빠졌다.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가 지난달 28일 시작한 '게임중독법 반대 온라인 서명운동'에는 하루 만에 4만명이 모였고, 최근 23만명을 넘어섰다. 국내 게임업계는 정부 규제에 대한 항의 표시로 오는 14일 개막하는 국내 최대 게임 전시회 '지스타 2013'에 대대적인 불참을 선언했다.
문제는 정부의 게임산업 규제가 산업의 성장동력을 끊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신작 게임 출시가 급감했다. 게임물등급위원회에 따르면 신작 게임 등록건수는 2011년 2,115건에서 정부 규제가 본격화된 2012년 1,438건으로 대폭 줄었다. 올 들어 10월까지는 632건에 그쳐 사상 최저치를 기록할 것이 확실시된다. 김성곤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사무국장은 "게임은 투자에 따른 선순환 구조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규제가 투자심리를 급격히 위축시켰다"며 "신작 출시 연기는 물론 개발 중인 게임을 포기하는 업체들도 속출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반사이익은 고스란히 외국산 게임의 몫이다. 시장조사업체 게임트릭스에 의하면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국내 온라인 게임시장에서 30% 안팎에 불과했던 외산 게임 비중이 올 들어 절반을 넘었다. 특히 미국 라이엇게임즈의 '리그오브레전드'는 단일 게임으로 점유율 40%를 넘나들며 독보적 위치를 굳혔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게임은 진흥 정책을 앞세우고 합리적 규제가 뒤따라야 한다"며 "충분한 공감대 없이 규제만 하면 한국 게임산업은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