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1년 11월1일 중국 베이징의 차이나월드 호텔에서 열린 부실채권(NPL) 국제포럼장. 회의 도중 정재룡 자산관리공사 사장은 원자바오 중국 농업ㆍ금융담당 부총리(현 총리)로부터 ‘당연한 듯하면서도 섬뜩한 발언’을 들었다. 원자바오는 “중국의 성장이 갑자기 멈출 경우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다”고 말했다. 그의 표정에는 변함이 없었다. 미국이 쌍둥이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진행 중인 위앤화 절상 압력으로 9%의 고도성장 중인 중국경제는 물론 그 이익을 함께 만끽했던 세계경제에 경고등이 켜졌다. 중국 은행들이 안고 있는 거대부실은 위앤화 절상이 단행될 경우 중국경제에 폭탄으로 작용할 것이다. 준비 없는 환율절상은 곧 중국경제의 경착륙을 의미한다. 기업들에 퍼주기 대출을 일삼아온 중국 시중은행들에는 ‘파산’이라는 괴물이 엄습할지 모른다. 지난해 말 현재 중국 4대 국영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은 전체의 15%. 금액으로 환산하면 2조4,000억위앤(2,892억달러)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0%를 넘는다. 진동수 재정경제부 국제업무정책관은 “일부에서는 최소 25%까지 전망한다”(3월8일 대한상의 간담회)고 말했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는 40~50%에 달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중국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은행들에 수백억달러의 공적자금을 퍼부었다. 박해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을 솎아내고 있지만 신규대출이 늘어 부실규모는 오히려 커졌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금융부실은 그나마 6,000억달러를 넘는 외환보유고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중국정부가 정작 두려워하는 것은 위앤화 절상이 몰고 올 성장률 둔화와 이로 인한 사회적 소요(騷擾)다. 김종만 국제금융센터 박사는 “중국은 1년에 700만명의 대학 졸업생과 일반인 1,300만명이 농업지역에서 도시로 이동한다”며 “연간 2,000만명의 일자리가 필요하고 최소 연간 7%의 성장이 되지 않을 경우 폭동이 일어날 것”이라며 금융개혁보다 성장이 최대 현안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중국 일부 동북지역 농촌에서는 일자리 부족으로 끊임없이 소요사태가 벌어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용수 한국은행 아주경제팀장은 “경제적인 불확실성은 정치문제로 연결된다”며 “중국정부는 최소 8% 중반대의 성장을 원한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통신의 칼럼니스트인 윌리엠 페섹은 “중국 공산당에게 경제는 섹스와 같은 것이며 GDP 하락은 섹시함을 상실하는 것과 같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부실한 시장과 제도만큼 헤지펀드들에 좋은 먹잇감은 없다. 중국 내에 들어온 헤지펀드는 최소 수백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남종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의 외환보유액 6,000억달러 중 반 이상이 절상을 노린 헤지펀드라는 말도 있다”고 말했다. 위앤화 절상은 차익을 얻은 외국자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도화선이다. 그럼에도 중국정부는 위앤화 절상에 따른 갑작스러운 환위험을 헤지할 방책이 없다.(최희남 재경부 외화자금 과장) 중국을 수출비중 1위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 중국 상품과 경쟁하는 기업들은 가격경쟁력에 도움이 되겠지만 위앤화의 급격한 절상은 이처럼 우리에게 상상을 불허하는 불확실성을 안겨주고 있다. 그 그림자는 우리에게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 /특별취재팀=김영기기자 young@sed.co.kr 이종배기자 김민열기자 현상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