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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가 매각이라는 특단의 조치에 돌입한 것은 국내에서는 실적부진이라는 수렁에 빠지고 본사인 테스코도 대규모 분식회계 논란에 휩싸이는 이중고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경품행사 조작과 개인정보 유출로 고객 신뢰도가 급격히 추락한 것도 홈플러스 매각을 앞당기는 요소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결국 해외법인 중 매출 선두를 달리는 홈플러스를 조기에 매각해 위기를 수습하려는 테스코와 잇따른 매출 하락으로 입지가 흔들리는 홈플러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홈플러스가 매각을 서두르는 것은 모기업인 테스코가 전대미문의 위기에 놓인 탓이 가장 크다. 유럽 최대 유통업체인 테스코는 올 상반기 40년 만에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고 지난 9월부터는 4,6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분식회계를 저지른 것이 발각돼 영국 금융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이 사건으로 필립 클라크 회장을 비롯한 테스코 경영진 8명이 전원 사퇴하고 유니레버 출신의 데이브 루이스 회장이 전격 영입됐다.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 전문가로 통하는 루이스 회장은 취임 직후 테스코 해외법인의 실적을 우선적으로 검토한 뒤 매각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신에 따르면 테스코는 해외법인 매각을 위한 주관사로 글로벌 투자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를 선정하고 한국 홈플러스와 태국 테스코로터스에 대한 실사를 진행했다. 홈플러스가 매출에서는 테스코로터스를 앞섰지만 자산가치에서는 테스코로터스가 10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 최대 7조원대로 추산되는 홈플러스를 먼저 선택했다는 설명이다.
국내 대형마트 '부동의 2위'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홈플러스 매각을 앞당긴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1999년 테스코와 삼성물산의 합작사로 탄생한 홈플러스는 테스코 해외법인 중 유일하게 고유 브랜드를 사용할 정도로 알짜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월마트·까르푸 등 글로벌 유통기업들이 줄줄이 국내 시장을 철수할 때도 홈플러스는 승승장구하면서 매출 10조원에 재계순위 43위의 대형 유통기업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2012년 정부의 대형마트 규제와 출점 제한으로 매출이 급감하면서 올해까지 연속 3년째 역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구심점이었던 이승환 회장이 퇴진하고 올 7월에는 임직원이 고객 대상의 경품행사를 조작해 불법으로 경품을 수령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9월에는 고객 개인정보 575만건을 무단으로 수집해 보험사에 판매한 혐의로 검찰의 수사까지 받는 등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빠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통가에는 홈플러스가 올 상반기부터 점포별 직영매장을 임대로 전환하고 재고 물량을 비축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며 "임대매장의 보증금과 재고 물량을 더하면 매각가격을 훨씬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당초 홈플러스 인수전에는 롯데마트가 가장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롯데마트가 전국 홈플러스 점포 중 롯데마트와 상권이 겹치지 않는 우량 점포만 인수하겠다는 의향을 밝히면서 조기에 협상이 결렬됐다. 이후 홈플러스는 삼성물산·현대백화점그룹·신세계그룹 등과 계열사별 매각을 추진했으나 각자 입장이 엇갈리면서 이마저도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이 인수할 경우 독과점 문제와 골목상권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 결국 점포별 매각이라는 최후 카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홈플러스와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인 메가마트는 대형마트인 '메가마트' 13개점(중국 창저우점 포함)을 비롯해 드러그스토어 '판도라' 11개점, 라이프스타일 매장 '하우즈데코' 6개점을 운영하고 있다. 자체브랜드(PB) 상품도 9종이나 보유할 정도로 영남권에서 강소 유통기업으로 꼽힌다. 하지만 매출이 6,000억원대에 머물러 그동안 꾸준히 대형마트 인수에 관심을 보여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홈플러스가 메가마트·화룬완자 등과의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계열사 전체 매각이나 계열사별 매각을 통해 매각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상 최악의 자금난에 빠진 테스코의 숨통을 틔우려면 홈플러스 매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테스코가 국내외 기업에 홈플러스 점포를 일괄 매각한 뒤 운영권만 보장 받는 방식으로 자금을 확보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이라도 최소 5조원대에 달하는 홈플러스를 통째로 인수하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며 "다만 테스코 본사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어 예상외로 낮은 가격에 매각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