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권의 5대그룹에 대한 여신이 98년 한해동안 은행별로 최고 60%이상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외국인 주인」 시대를 맞는 제일·서울은행의 여신감소폭이 은행 평균 감소폭보다 2~3배 가량 높아 이채를 띠었다. 또 단기성 고금리인 종합금융사의 5대 그룹 여신감소폭도 지난해 9월까지만 60%를 넘어섰다.이같은 현상은 5대그룹이 부채비율 축소를 위해 대거 채무상환에 들어간 데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저금리 현상이 지속되면서 회사채 시장에서 대거 자금을 조달, 이 자금으로 고금리 대출상환에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부 은행들은 또 5대그룹에 대한 여신이 급감했음에도 불구, 지난해 거액적자에 따른 자기자본 감소로 여신한도를 초과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18일 국내 은행권의 5대그룹에 대한 여신동향을 조사한 결과 지방은행과 외국계은행 국내지점, 농·수·축협 등을 제외한 14개 은행의 5대그룹에 대한 여신은 지난해말 현재(일부 은행은 9월·11월말) 지급보증분을 포함, 47조8,368억원으로 97년말에 비해 21.32%나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 지급보증분을 제외한 실대출은 작년말 28조3,684억원을 기록, 24.77%의 감소폭을 나타냈다.
은행별로는 우선 5대그룹 주채권은행인 한빛·외환·제일은행의 여신이 지난해말 현재 14조1,505억원으로 전년말에 비해 32.78%가 감소, 은행권 평균 감소폭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은행별 여신동향을 볼때 가장 관심을 모은 곳은 서울과 제일은행. 서울은행의 경우 5대그룹 여신이 98년말 현재 1조2,935억원으로 지난 한해동안 무려 60.2%나 수직하락, 조사대상 은행의 평균 감소폭보다 3배 가까운 감소율을 기록했다. 특히 삼성과 대우그룹에 대한 여신 감소폭이 88.97%와 71.47%로 여타 그룹에 비해 월등히 높은 감소율을 보였다.
뉴브리지로 매각이 확정된 제일은행도 98년말 1조9,719억원으로 1년전에 비해 42.17%의 감소율을 기록, 은행 평균 감소폭보다 2배 가량 높았다.
관심을 모으고 있는 대우그룹에 대한 여신은 D/A·D/P(무신용장인수·지급인도)를 포함, 지난해 12월말 현재 지급보증을 포함, 2조300억원으로 1년전에 비해 21.92%가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제일은행의 5대그룹에 대한 여신이 이처럼 급감한 데 대해 금융계에서는 국내 그룹들이 이들 은행의 「외국인 주인」 시대를 앞두고 대출처를 여타 금융기관 등으로 옮기지 않았느냐는 분석이 일고 있다.
이와관련, 외환은행은 대우그룹에 대해 지급보증을 제외한 실대출금 부분에서 지난해 11월말 현재 1조2,140억원으로 97년말에 비해 6.7%가 오히려 증가, 이채를 띠었다.
이밖에 5대그룹에 대한 여신 감소폭이 상대적으로 높았던 곳은 평화(65.90%)와 합병하나(44.95%), 주택(36.74%) 등이었다.
또 은행권 전체의 5대 그룹에 대한 여신이 줄었음에도 불구, 수출입은행은 오히려 비교적 높은 여신증가율을 기록, 흥미를 끌었다. 지난해 9월말 현재 수출입은행의 5대그룹 여신(CRT기준)은 지급보증을 포함, 10조1,570억원으로 97년말에 비해 18.27%의 증가율을 나타냈다.
5대그룹에 대한 여신 감소폭이 이처럼 높게 나타난 것은 우선 정부가 5대그룹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을 채찍질하면서, 해당 그룹들이 대거 부채비율 축소작업에 들어갔기 때문. 부채비율을 200%이내로 축소해야 하는 올해말에는 은행권의 5대그룹에 대한 여신 감소현상이 더욱 뚜렸해질 것이라는 얘기다.
여신감소의 또다른 주요원인중 하나는 금리하향 현상. 특히 지난해 하반기 이후 시중실세금리 가락이 지속되면서 5대그룹들은 일제히 회사채 시장으로 달려갔다. 5대그룹은 지난한해동안 국내 전체 회사채 총발행규모(54조원)의 70% 가량을 차지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회사채 시장에서 장기저리 자금을 조달, 은행과 종합금융사의 대출금 상환에 나선 것. 이에따라 97년말 현재 32조5,109억원에 달했던 종금사의 5대그룹 여신 규모는 9개월만에 62.64%가 수직하락, 12조1,478억원까지 줄달음쳤다. A종금사의 여신담당 임원은 『9월 이후에도 금리하락이 지속되면서 5대 그룹 대부분이 기존 대출금에 대해 일제히 중도 채무상환에 나섰다』며 지난해말 종금사의 총여신규모는 9월말보다 훨씬 낮은 수준까지 내려앉았을 것으로 내다봤다.
은행권의 5대그룹에 대한 여신감소는 특히 일부 은행이 지난해말 대규모 적자를 기록, 자기자본이 감소함에 따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동일인 대출한도가 축소되기 때문이다.
한편 은행권의 5대그룹에 대한 여신 통계는 개별 은행들의 자체통계에 의한 것으로, 금융감독원 등 정부의 공식 통계와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은행간 세부 여신 분류기준에 따라서도 다소 차이를 보일 수 있다. 【김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