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공회의소가 일본에 수출하거나 해외시장에서 일본과 경쟁하는 수출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우리 기업 10곳 중 7곳이 엔저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엔저 대책을 계획 중'이라는 답변(18.3%)까지 포함하면 그동안 우리 수출기업의 발목을 잡아온 대표 악재에 무방비로 노출된 기업이 10곳 중 9곳인 셈이다. 엔저 흐름이 어제오늘 이야기도 아닌 판에 이제껏 엔저 대책을 세우지 못한 이유는 뭘까. 기업들은 '대외경제환경의 불확실성(60.8%)'을 가장 높게 꼽았다. 대외경제환경의 불확실성이란 구체적으로 엔저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얼마나 심각해질지 등을 확실히 모른다는 것으로 한마디로 이렇게까지 길고 심각해질지 몰랐다는 뜻이다.
엔화는 지난 4년간 원화 대비 40% 절하됐다. 아베노믹스가 본격화한 2013년 이후 엔저 흐름은 더욱 가팔랐다. 그런데도 일시적일 것으로 생각하고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은 큰 문제다. 물론 기업이 장기적 전망을 가지고 미리 대비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더라도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환변동보험 등에는 진작에 가입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정부도 무역보험공사를 통해 환변동보험 인수 한도를 늘리거나 환변동보험료를 인하하도록 하는 등 실질적 조처를 했어야 했다.
엔저 현상은 앞으로 우리 기업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5일 내놓은 '한국 경제 연례보고서'를 보면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 기업의 가격 인하 공세와 이에 따른 우리 기업의 수출물량 감소 등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 IMF는 특히 일본 기업이 엔저에 따른 여력을 가격 인하에 반영하는 대신 설비 증설이나 연구개발(R&D) 강화에 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는 우리 기업의 수출경쟁력을 장기적으로 훼손할 수 있는 중요 사안이다. 지난주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금리 인상 시사 발언으로 엔저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도 자구 노력을 강화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