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7월25일 밤10시, 미국이 일본자산 동결명령을 내렸다. 골자는 허가제. 미국 내 일본자산을 사용하려면 허가를 받도록 했다. 철강과 고철의 대일 수출금지에 이은 두번째 경제 제재인 자산동결령은 사실상 석유수출금지 효과를 낳았다. 일본자산의 대부분이 석유구매 자금이었으니까. 자산동결령은 일종의 경고장. ‘미국이 수출한 석유가 침략전쟁에 쓰인다’는 여론이 들썩이는 가운데 일본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침공할 움직임을 보이자 빼든 압박책이다. 일본은 초비상 상태에 들어갔다. 석유 소비량의 80%를 미국산에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전체 에너지 사용에서 석유 비중은 7%에 불과했지만 대부분 군수용이었다. 자산동결이 지속되면 군을 유지할 수 없게 될 형편에서도 일본은 동결명령 사흘 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침공에 나섰다. 일본의 강수에 영국과 네덜란드도 미국 편을 들었다. 이른바 ‘ABCD 포위망(미국ㆍ영국ㆍ중국ㆍ네덜란드의 대일 봉쇄)’에 맞서 일본은 당시 세계 3대 석유산지였던 네덜란드령 보르네오를 노렸다. 진주만 기습도 미국 태평양함대가 존재하는 한 보르네오를 점령해도 불안에 떨어야 한다는 계산에서다. 뒷마당을 청소한 일본은 손쉽게 보르네오의 유전지대를 장악했지만 석유 부족은 마찬가지. 파괴된 유정과 생산시설을 서둘러 복구했지만 일본 유조선이 미국 잠수함의 집중적인 공격목표가 된 탓이다. 결국 개전 당시의 비축분인 2년치가 소모된 후 일본의 전쟁수행 능력은 극도로 떨어졌다. 자원과 경제력이라는 벽을 넘지 못한 기억 때문일까. 일본의 석유비축일은 143일분으로 주요 국가 중 가장 길다. 374억달러어치에 해당하는 규모다. 중국도 1,500억달러를 전략유 비축에 투입할 계획이다. 우리만 제자리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