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2월28일] 콘스탄티누스대제

하늘에서 십자가의 환상이 나타났다. 십자가에는 ‘이 징표로 너는 승리하리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교회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유세비우스가 지은 ‘콘스탄티누스의 생애’ 일부분이다. 312년 서로마제국을 장악한 콘스탄티누스는 내란 종식의 공을 그리스도의 은혜로 돌렸다. 승전 이듬해인 313년 그는 밀라노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한다. 콘스탄티누스는 324년 동로마 황제인 리키니우스와의 결전에서도 ‘그리스도의 군기’를 내걸었다. 결과는 완승. 동ㆍ서로마제국의 유일한 황제에 오른 그는 325년 종교회의를 소집한다. 니케아종교회의에서 부활절의 날짜와 기독교의 핵심교리인 성부ㆍ성자ㆍ성령의 삼위일체 교리가 나왔다. 박해받던 기독교를 구원한 성인으로 추앙받지만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은 임종 직전으로 전해진다. 세례조차 받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274년 2월28일 태어난 그가 주로 성장한 지역은 오리엔트 지방과 브리튼섬. 2대 업적이라는 기독교 공인과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 천도는 페르시아와 이집트 등 동방의 황제숭배에 자극받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콘스탄티누스가 공인한 기독교는 392년 2월28일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국교로 지정돼 중세를 지배했다. 콘스탄티누스는 황제권 강화를 위한 제도 개혁에도 힘을 기울였다. 군대를 정비하고 관료체제를 도입하는 데는 돈이 들어갔다. 솔리두스금화와 금본위제가 도입된 이유다. 솔리두스금화는 15세기까지 통용되며 ‘중세의 달러’로 군림했다. /권홍우ㆍ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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