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한국형 IB가 살길이다] <1부-2>자통법, 시장지도를 바꾼다

'한국의 골드만삭스' 도약 전략 짜기 분주<br>규제 줄고 사업영역은 늘어 기선제압·시장선점에 초점<br>수익률 다툼 더 치열해져 차별화된 경쟁력 확보가 관건<br>장기적으론 외국계 IB·은행·보험과의 싸움도 대비해야



“지금부터 자본시장통합법 준비 상황은 영업 비밀입니다. 초기 시장 선점을 위해 경쟁사에 전략을 노출해서는 안 됩니다.” 증권사들이 내년 2월 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 반년 정도 남은 시간 동안 새로운 법ㆍ제도에 맞는 인력과 조직, 시스템을 완비하고 투자자를 사로잡을 수 있는 금융투자상품 개발도 완료해야 한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시장이기 때문에 경쟁사에 대한 초기 기선 제압과 시장 선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전략 노출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자통법 시행을 앞두고 증권사들은 ‘한국의 골드만삭스’와 ‘한국판 매쿼리’를 꿈꾸고 있다. 그러나 꿈을 향해 가는 길이 쉽지 않아 보인다. 자통법이 규제 완화를 통해 발전의 기회를 준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더 많고, 더 강한 경쟁 상대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과제도 담고 있다. 증권사들은 업계 내 경쟁에서 더 나아가 외국계 투자은행(IB), 은행, 보험사와의 경쟁에도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규제는 줄고 사업 영역은 늘고=자통법은 금융투자업계에 영업과 상품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주는 법이다. 현재 금융투자업계는 증권회사ㆍ선물회사ㆍ자산운용사ㆍ신탁회사 등으로 나뉘어져 있고 이들 간의 겸업은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다시 말해 증권회사는 선물이나 자산운용 등의 업무를 취급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겸업 허용으로 증권회사는 종합금융투자회사의 길을 갈 수 있게 됐다. 자통법은 일부 업무에 있어 은행의 지원을 받아야 했던 증권사들에 자립의 기회를 줬다. 신용공여ㆍ지급보증업무ㆍ대출 중개 등의 업무가 허용됨에 따라 은행과의 공조 없이도 M&A딜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보다 완전한 의미에서의 IB 업무가 가능해진 것이다. 더불어 자통법은 금융투자회사들의 부수업무 범위를 확대를 통해 증권사들에 송금ㆍ결제 등의 소액지급결제 기능도 허용했다. 이에 따라 은행 지급결제망 회원으로 가입한 증권사의 고객들은 증권계좌를 통해 입출금ㆍ송금ㆍ이체 등의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승부해야=자통법은 영역 범위 확대와 다양한 상품 출시 기회 제공이라는 점에서 증권사를 중심으로 하는 금융투자업계에 유리해 보인다. 그러나 이 같은 변화는 기회인 동시에 위협 요인이다. 구철호 현대증권 연구원은 “자통법은 국내 증권사가 향후 IB로 발전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 요인”이라면서도 “IB 로의 발전은 긴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는 반면 경쟁 심화로 인한 수익성 하락 우려는 가까운 시간 내 가시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자통법은 증권사들에 영업력을 확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대신 그 대가로 차별화된 경쟁력을 요구한다. 이제 증권사들은 ‘그들만의 작은 리그’에서 벗어나 더 넓은 필드에서 수익률 게임에 나서야 한다. 진입 장벽 완화로 새로운 경쟁 상대가 언제든지 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더 넓은 영역에서의 수익률 경쟁은 더 많은 노하우와 노력을 요구한다. 그동안 증권사들이 내놓는 상품은 ‘그 나물의 그 밥’ 수준이었다. 그러나 상품 포괄주의 도입으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서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에 따라 회사 간 상품 경쟁력은 뚜렷한 차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상품 개발 노하우에서 국내 업체들을 압도하는 외국계 증권사와의 경쟁은 더욱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IB 업무에 있어서도 외국계 증권사들의 경험은 위협적이다. 최종원 동양종금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권사들은 자본시장 확대를 기다리기 전에 해외 증권사와의 경쟁에 대비해 자기자본 확대를 고민하고 IB 부문에 대한 초기 투자에 중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는 은행ㆍ보험과의 경쟁도 대비해야=업종 내 경쟁 다음에 기다리는 것은 덩치 면에서 증권사들을 압도하는 은행과 보험이다. 자통법이 대부분 금융투자업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기능별 규율체계에 따라 일부 은행 업무는 자통법의 영향권에 포함된다. 이는 은행과 증권사가 함께 경쟁해야 하는 영역이 있다는 의미다. 은행 입장에서 보면 지급결제라는 독점적 지위 상실로 은행 예금이 증권업계로 이탈할 가능성이 커지긴 했지만 증권사들에 비해 우위에 있는 자본력을 바탕으로 IB 업무에 나설 수 있고 새로운 파생상품을 개발해 고객 유치에 나설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웬만한 규모의 은행은 이미 증권사를 계열사로 둔 상황이다. 기존의 우리ㆍ신한ㆍ하나은행 등에 이어 최근에서는 국민ㆍSC제일ㆍ기업은행 등도 증권 계열사를 만들었다. IB업무와 상품 판매 등에 있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상천 한국은행업협회 조사법규팀 부장은 “은행업계도 자통법 시행에 대비해 기업고객 대상 여수신 무문과 IB 부문의 시너지 확대, IB업무 확대에 따른 리스크 관리 강화, 최신 금융기법 도입을 위한 전문인력 양성 등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며 “이미 시중의 많은 은행들은 이를 위해 조직개편 등의 대책 마련에 나선 상태”라고 설명했다. 보험업계는 아직까지는 자통법과 커다란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보험업계는 현재 보험업법 개정을 통해 다양한 파생상품 개발ㆍ판매와 소액지급결제 등이 가능해지도록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오영수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통법 시행으로 보험회사는 자산운용 수단이 현재보다 다양해질 것이라는 점 외에는 당장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보험사들도 앞으로 보험기능과 투자기능을 결합한 상품개발, 고객중심 마케팅과 판매채널 정비, 자산운용 부문 강화 등의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어스턴스 몰락에서 배우자"
리스크관리 역량 강화에도 총력
지난 3월 미국 5위의 투자은행(IB)인 베어스턴스가 좌초했다. 지난 1930년대 대공항도 이겨냈던 85년 역사의 대형 IB가 서브프라임 모지기 부실을 이기지 못해 무너진 것이다. 2005~2007년 3년 연속 포천지 선정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이었던 베어스턴스가 벼랑 끝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베어스턴스에 이어 리먼브러더스가 위험에 직면했다. 연초 65달러였던 리먼브러더스의 주가는 7월 중순 12달러까지 폭락했고 최근에도 17달러선에 머물고 있다. 오는 2012년 1월 만기 채권금리는 6개월 만에 연 5.2%에서 7.7%로 폭등하기도 했다. 메릴린치도 힘든 상황이다. 주가는 연초의 반토막 수준으로 떨어졌고 2018년 만기 채권 금리는 연 8.15%까지 치솟았다. 투자 대상의 위험도를 뛰어넘는 공격적 영업 방식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초대형 글로벌 IB들의 위기는 IB를 추구하는 국내 증권업계에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은 대형 IB로 나가기 위해 리스크 관리 역량을 키우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조사한 증권사 리스크 관리 인프라 현황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리스크 관리 전담인력은 증권사 1곳당 평균 5.6명으로 지난해 6월 말 2.9명에 비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리스크 관리 전담 조직을 둔 곳은 26개사에서 48개사, 리스크 관리 전담 임원을 둔 곳은 3개사에서 24개사로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증권사들이 추진하는 리스크 관리 역량은 크게 전문인재 영입과 시스템 구축으로 구분된다. 삼성증권은 3월 미국 메릴린치 본사 리스크 관리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지낸 권경혁 전무를 리스크 관리 총책임자로 영입했다. 대우증권은 5월 실시간으로 전사적 리스크를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 구축을 완료한 후 운영에 들어갔다. 이 시스템은 ELS 및 ELW 등 다양한 장외파생상품에 대한 실시간 리스크 측정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IB 시스템 수준에 맞춰 전사적 리스크 관리를 통합해 관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현대증권은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감독이 가능한 리스크관리위원회를 이사회 산하에 신설했다. 또 한국투자증권은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에 입각해 리스크 관리와 연계된 성과보상 시스템인 RAPM(Risk Adjusted Performance Measurement)제도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오우택 한국투자증권 리스크관리본부장은 "리스크 관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의 지배시스템"이라며 "이사회ㆍ대표이사ㆍ리스크관리위원회가 어떤 이해 관계를 갖고 구성되었는지, 리스크관리위원회가 대표이사 견제 기능을 갖고 있는지 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시장위험ㆍ신용위험ㆍ운영위험ㆍ유동성위험 등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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