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민주화 시위… "빈곤 해결" 국민열망 담겨 60년대 아시아 대표 부자나라서45년간 군부독재로 최빈국 전락물가폭등·부패 만연도 민심 자극 김승연기자 bloom@sed.co.kr 미얀마의 사프란 혁명(승려들의 가사 색깔과 비슷한 노란색 꽃)의 이면에는 빈곤 해결을 요구하는 빵의 문제가 놓여있다. 승려들을 주축으로 한 반정부 시위대는 뚜렷한 이슈를 제시하지 않았지만, 가난 해결이라는 국민적 열망이 담겨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미얀마는 세계적인 쌀 생산지로 1960년대엔 필리핀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는 부국이었다. 그러나 미얀마 경제는 45년간의 군부독재로 세계 최빈국으로 쇠락했다. 미얀마 경제는 1962년 네윈이 군사쿠데타로 집권하면서부터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는 집권후 주요 산업을 모두 국유화하고, 외부세계와의 고립화 정책을 취해 주 소득원인 쌀수출이 급감해 경제난을 초래했다. 1988년 3000여명의 희생자를 낸 민주화 시위로 네윈 장군이 물러났지만, 그후 등장한 군부세력의 부정부패는 민심 이반을 가속화시켰다. 지난해에는 물가폭등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서민들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지난해 1.7㎏에 3,000 차트였던 닭고기 값이 5,500차트로, 야자유는 1.7㎏에 1,250차트에서 2,300차트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재정 적자가 심각해지자 군사정부는 나라 살림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세금을 올렸다. 지난 8월 15일 군정이 천연가스값을 4배나 올리고 기름값도 인상한 것도 궁지에 몰린 군사정부가 재정을 늘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연료비 인상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대가 발생했다. 국민의 90% 이상인 국가에서 지식인 계층인 승려들이 시위에 앞장서 물가 인상에 반대하고, 시민 생활의 개선을 촉구했다. 그 시위는 민주화 행진으로 확산됐다. 이웃 동아시아 국가들이 자유시장 경제와 결합해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미얀마는 폭압적인 군부 통치하에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추산으로 1,800달러(2006년)로 우간다에도 약간 못 미치며 지난해 성장률도 주변국에 크게 뒤떨어지는 3% 성장에 그쳤다. 이런 가운데 집권 군부세력의 부패는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지난해 군정 최고지도자 탄쉐 장군이 딸의 결혼식을 초호화판으로 치러 빈축을 샀다. 결혼식장에서 딸 탄타르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다이아몬드 등 번쩍이는 보석으로 치장을 했고, 결혼식이 치러지는 주택 풍경도 무척 호화로왔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날 결혼식에 들어온 선물은 각종 보석과 차량 등 5,000만 달러로, 미얀마의 한해 복지 예산의 3배에 달하는 규모였다. 그러나 미얀마의 환경 자체가 열악한 것은 아니다. 풍부한 천연자원과 비옥한 토지, 상당한 석유와 가스 매장량을 자랑하고 있다. 단지 건전한 경제정책의 결핍이모든 것을 다르게 만들어놓고 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태국 치앙마이 소재 바후연구소의 미얀마 문제 전문가인 아웅 투 네인은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 달리 미얀마가 지난 62년 모든 기업을 국유화한 것은 완전히 길을 잘못 든 경우로 그 이후 경제는 줄곧 악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옥스퍼드대 동남아 전문가인 피터 카레이는 "군사정권이 물러나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강조했다. 입력시간 : 2007/10/01 1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