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일감 몰아주기 과세' 이렇게 생각한다


정부는 지난 5일 한국조세연구원 정책토론회를 통해 대기업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방안의 윤곽을 공개했다. 정부는 주식가치 증가분이나 영업이익에 증여세를 매기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데 위헌 논란도 일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본다. ● 한상국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실상 세금없이 富대물림 수단
공정사회 구현위해 적극 고려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일부 대기업은 경영혁신 차원에서 그룹내에 특정 회사를 설립하고 물류ㆍ전산ㆍMRO(소매성자재 구매대행) 등을 담당하도록 했다. 이들 특수관계 기업에 그룹 내 관련 물량을 몰아주면서 경영혁신 차원을 떠나 수혜기업의 가치가 급상승하고 일부 주주가 막대한 주가상승 이익을 얻는 등 세금 없이 부가 대물림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지난 2004년 상속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지만 특수관계기업 간의 물량 몰아주기를 통한 이익 분여는 기존의 증여와 다른 방식이나 사실상 세금 없이 부를 대물림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좀 더 공정한 사회로 나가는 과정에서 과세방안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비록 상속ㆍ증여세제에 완전포괄주의를 도입해 과세할 수 있는 길을 많이 넓혀놓았지만 과세란 개인의 재산을 침해하는 속성을 가지므로 엄격한 조세법률주의 준수가 요구되며 이에 따라 사안별로 과세하기 위해서는 과세요건(과세대상, 납세의무자, 과세표준 등)이 갖추어져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과세요건을 갖춰 수혜기업 지배주주와 특수관계기업이 재화나 용역 같은 물량을 수혜기업에 몰아줘 발생한 이익에 과세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조세부담의 공평성을 높이고 공정사회를 구현하는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다. 과세대상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이익을 받은 수증자가 될 것이며 수증자의 범위는 수혜기업의 지분이 일정 비율을 초과하는 자(수혜기업의 지배주주와 배우자ㆍ친족)가 될 것이다. 또 수혜기업의 매 사업연도 매출거래를 기준으로 특수관계기업과의 거래비율이 일정비율을 초과하는 경우에 과세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세대상ㆍ요건을 바탕으로 과세방안을 설계해보면 증여세, 소득세 또는 법인세로 과세하는 방안 등을 도출할 수 있다. 증여세 과세 방안은 물량 몰아주기로 수혜기업의 대주주가 얻는 이익이 주가 상승으로 나타나므로 주식가치 상승분을 증여로 봐 과세한다. 세금 없는 부의 대물림에 대해 비교적 철저히 과세할 수 있다. 특수관계법인과 물량 몰아주기로 얻은 이익은 수혜기업의 영업이익으로 나타나므로 수혜기업의 지배주주 등에게 증여세를 과세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주가하락 여부에 관계없이 세후 영업이익이 발생하는 경우 과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소득세 과세 방안은 특수관계법인의 물량 몰아주기로 얻은 이익이 수혜기업의 영업이익으로 나타나므로 이를 기준으로 과세하되 주주에게 배당한 것으로 간주해 할증된 배당소득세를 과세한다. 주식가치 변동과 무관하게 배당간주영업이익을 계산해 과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법인세 과세 방안은 특수관계법인의 물량 몰아주기로 이익을 얻은 수혜기업의 매 사업연도 매출거래를 기준으로 특수관계기업들과의 거래비율이 일정비율을 초과하는 경우 과세한다. 법인세법(제55조의2)의 비사업용 부동산에 대한 법인세 추가과세와 유사한 방법이어서 제도 설계가 쉽고 이중과세 문제가 없는 장점이 있다. 한편 물량공급기업이 수혜기업에 몰아준 물량에서 발생한 비용의 일부에 대해 손금불산입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앞의 각 방안은 방안별로 장ㆍ단점이 있어서 구체적인 과세방안을 도출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사회적 합의를 통해 효과는 크면서 부작용은 작은 합리적인 과세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
미실현 이익에 과세는 위헌 소지
징벌적 상속세율도 대폭 개선을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방안의 윤곽이 나왔다. 지난주 한국조세연구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일감 몰아주기를 대주주의 사실상 증여행위로 간주하고 증여세, 소득세, 법인세 등으로 과세하는 5가지 방안이 제시됐다. 토론회에 참가한 기획재정부 김형돈 국장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 필요성을 공감하며 일감 몰아주기를 변칙적인 증여행위로 보고 있다"는 발언에 비춰볼 때 일감 몰아주기로 증가한 주식가치나 영업이익에 증여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유력해보인다. 그런데 현행 공정거래법은 일감 몰아주기가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돼 부당지원행위에 해당하면 과징금을 부과한다. 상속증여세법은 무상 또는 시가보다 30% 이상 높은 가격이나 낮은 가격으로 거래한 경우에 증여세를 부과하며 시가로 거래하면 근거가 없어 과세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는 시가로 거래했을지라도 거래물량이 많은 경우 사실상의 증여로 간주하고 공정사회 코드를 내세워 증여세를 과세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도입하려는 증여세 과세방안에는 문제가 많다. 우선 상속증여세법상 증여에 해당하지 않는 사안에 증여세를 부과하려고 한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증여는 "직접 또는 간접적인 방법에 의하여 무상으로 이전하는 것 또는 기여에 의하여 타인의 재산가치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정의된다. 그런데 일감 몰아주기는 수직 계열화된 기업집단 내 기업들이 경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일반적 경영의사 결정 방식이다. 일감을 몰아줌으로써 한쪽만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양자 모두가 이득을 보는 정상적인 거래다. 이 때문에 지난 2007년 대법원도 단순히 물량을 몰아준 것만으로는 과세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공정거래위원회 심사지침도 물량이 현저하게 많다고 해도 효율성 증대 효과가 있으면 부당지원행위로 보지 않는다. 또한 유력한 과세 방안인 '주식가치 증가분에 대한 증여세'는 주가 상승에 금리, 환율, 경기 등 너무나 다양한 원인이 있는데도 일감 몰아주기로만 설명하려 하고 있다. 과연 대상 기업들이 수긍할지 의문이다. 비상장회사는 주가를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게다가 미실현 이익에 과세하고 주식가치가 하락한 경우 보상 방안이 없는 점은 1990년 도입됐다가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은 토지초과 이득세를 떠올리게 한다. 다음으로 '영업이익에 대한 과세방안'은 수혜 기업의 영업이익과 주주의 증여이익 간에 상관관계가 매우 낮고 회사(영업이익)와 주주를 구별하는 상법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심지어 주식가치가 하락한 경우라도 영업이익이 발생하면 증여세를 내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마저 초래될 수 있다. 이처럼 세법에서 일감 몰아주기를 규율하기 어려운 사항인데도 굳이 세법을 왜곡시키면서 시장경제에 부합하지 않게 운영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상법, 공정거래법, 형법 등의 기존 규정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를 선별적으로 규율하는 것이 바람직해보인다. 개정 상법은 회사 기회를 특정인에게 몰아주면 이사에게 책임을 묻고 손해배상을 하도록 했고 이사와 회사의 자기거래 승인요건을 강화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또한 공정거래법은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공시 강화 등을 추진 중이다. 더욱이 일감 몰아주기에 찬성한 이사들은 형법의 업무상 배임죄 또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 이처럼 일감 몰아주기가 부당지원 행위라면 현행법으로 막을 수 있는데도 정부가 위헌 소지를 감수하면서까지 미실현 이익에 세금을 물리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승적 차원에서 기업들로 하여금 편법 승계 논란을 일으키게 하는 현행 징벌적 상속세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방안을 적극 강구해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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